김범수 카카오 창업자(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가 SM엔터테인먼트 인수 과정에서 시세를 조종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지 2년 8개월 만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카카오가 장기간 이어온 사법 리스크의 굴레에서 벗어날 계기가 마련됐다. 아직 항소 절차가 남아 있지만 IT 업계 안팎에선 이번 판결이 카카오에 '심리적 전환점'으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21일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5부(부장판사 양환승)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 센터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카카오는 그간 수사와 재판에 휘말리며 '리스크 기업'으로 낙인찍혔다. 그 사이 네이버 등 경쟁사가 인공지능(AI)·글로벌 콘텐츠 투자에 속도를 내는 동안 카카오는 내부 쇄신에 매달리며 체질 개선에 집중했다. 실제로 계열사를 두 자릿수까지 줄이는 고강도 정리를 단행했지만, 그룹 전체 분위기는 위축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최근에는 15년 만에 단행한 카카오톡 대규모 개편 과정에서 친구탭 UI 변경을 둘러싼 이용자 불만이 폭주하면서 브랜드 신뢰와 주가 모두 흔들리는 상황이었다. 이런 가운데 김 센터장과 카카오 법인이 모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경영 리스크 해소와 동시에 카카오뱅크의 최대주주 자격 유지에도 숨통이 트였다. 현행 인터넷전문은행법상 산업자본이 금융사 지분 10% 초과 보유 시 최근 5년 내 벌금형 등 법령 위반 전력이 없어야 하는데, 이번 무죄로 적격성 논란이 사라진 셈이다. 카카오는 올해 6월 말 기준 카카오뱅크 지분 27.16%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재판부는 "검찰의 핵심 증거 진술 신빙성이 부족하고, 시세조종 목적이 증명되지 않았다"며 김 센터장과 카카오 전·현직 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김범수 센터장은 선고 직후 입장문을 통해 "오랜 시간 꼼꼼히 자료를 챙겨봐 주신 재판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그동안 카카오에 드리워진 주가조작과 시세조종의 그늘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카카오도 공식 입장을 내고 "재판부의 현명한 판결에 감사드린다"며 "그간 카카오는 시세조종을 한 부도덕한 기업이라는 오해를 받아왔으나, 이번 1심 무죄 선고로 그러한 오해가 부적절하였음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어 "에스엠 인수 과정에서 김범수 창업자를 비롯한 임직원 누구도 위법 행위를 논의하거나 도모한 바 없었다"고 강조했다.
또한 "2년 8개월간 이어진 수사와 재판으로 그룹이 여러 어려움을 겪었고, 급격한 시장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하기 힘들었던 점이 뼈아프다"며 "이를 만회하고 주어진 사회적 소명을 다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번 무죄 판결로 카카오는 경영·이미지 회복의 전환점을 맞게 됐다. 오랜 사법 리스크 해소로 투자심리 개선과 경영 정상화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카카오가 플랫폼 안정화, AI 중심 신성장, 지배구조 효율화 등에 집중하며 본업 경쟁력 회복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콘텐츠·게임 부문 실적 부진과 이용자 반발 등은 여전히 과제로 꼽힌다. 사법 리스크는 벗었지만, 신사업이 '실적 반등'이라는 결과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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