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식품의약국 청원까지 올라간 트럼프 '타이레놀 괴담'

임산부 복용 안전성 두고 논란 확산
타이레놀 제조사 "과학적 근거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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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한 시민단체가 식품의약국(FDA)에 타이레놀의 임산부 복용을 경고하는 문구를 타이레놀 겉면에 표기해야 한다는 내용의 청원을 제기했다. 이들은 타이레놀을 임산부가 복용하면 태아의 자폐증 유발 위험이 커진다고 주장한다. 타이레놀 제조사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반발하고 있지만,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폐증 환자 급증의 원인을 타이레놀로 지목한 터라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못하고 의·과학계와의 충돌로 이어질 태세다.

FDA 청원 올라간 임산부 위험성 논란…켄뷰사 "과학적 근거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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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에 따르면 지난 19일(현지시간) 미국의 시민단체인 정보제공동의행동네트워크(ICAN)는 FDA에 타이레놀 겉면에 표기된 안전성 문구를 변경해달라고 요청했다. 임산부가 타이레놀을 복용할 경우 태아의 자폐증 유발 위험이 있다는 내용을 제품 겉면에 경고 문구로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타이레놀의 안전성 안내 문구에는 "임신 중이거나 모유 수유 중인 산모는 사용 전에 의료전문가와 상담하라"고만 나와 있다.


ICAN은 기존 안전성 문구로는 임산부들이 타이레놀을 복용하기 쉽고, 이로 인해 위험성에 노출될 수 있다고 주장 중이다. ICAN은 청원서에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타이레놀 주 성분) 사용 위험 증가 및 신경발달 장애에 대한 경고 문구가 포함돼야 한다"며 "또한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 사용 시 용량과 기간, 빈도도 제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타이레놀 제조사인 켄뷰는 성명을 통해 FDA에 해당 청원을 기각해달라고 요청했다. 켄뷰 측은 "해당 시민청원의 문구 변경 요청을 받아들여야 할 과학적 증거는 뒷받침되지 않는다"며 "또한 연방법에 따라 결정된 안전성 문구의 내용을 시민 청원 절차로 변경할 수 없으며, 앞으로 법적 절차를 우회하는 용도로 악용될 위험성도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임산부 타이레놀 복용이 자폐 급증 주원인"…보건복지부 장관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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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타이레놀 논란의 진원지는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는 지난달 22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고 공개적으로 임산부가 타이레놀을 복용하면 자폐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해당 기자회견에는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미 보건복지부 장관과 마티 마카리 FDA 국장도 함께 참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과 수십년전 2만명 중 1명이던 자폐증이 미국 일부 지역서 31명중 1명정도로 급증했으며 2000년 이후 발병률이 400% 이상 늘어났다. 급격한 증가는 인위적 요인을 시사한다"며 타이레놀 복용이 주요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임산부들은 아프더라도 자폐증 위험을 받지 않으려면 타이레놀 복용을 하지 말고 견뎌야 한다"며 "기독교 공동체인 아미시와 쿠바 국민은 타이레놀 복용이 드물어 자폐증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배후에는 케네디 주니어 장관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는 장관 임명 전 환경·공중보건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며 20년 이상 미국 안팎에서 백신접종 반대운동을 이끌어왔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케네디 주니어 장관은 2005년부터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며 백신 거부 운동을 벌여왔으며, 2019년에는 남태평양의 사모아에서 MMR(홍역·볼거리·풍진) 백신 거부 운동을 주도했다. 사모아에서는 70여명의 어린이가 홍역으로 사망하기도 했다.

케네디 주니어 장관은 코로나19 사태 당시에는 해당 바이러스가 중국이 의도적으로 만든 세균 무기이며, 백인과 흑인을 제거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었다고 발언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미국 안팎에서 제기돼 온 각종 보건 관련 음모론 확산에 앞장서 왔던 것이다.


일각에서는 케네디 주니어 장관이 자폐증과 관련한 여러 가설들을 집대성했는데 이중 트럼프 대통령이 타이레놀을 지목한 것이란 분석도 제기됐다. 폴리티코는 "원래 케네디 주니어 장관을 비롯해 보건 당국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기 전부터 자폐증 원인 및 치료옵션과 관련한 31가지 정도 가설을 발표하려고 했는데 타이레놀 유발설도 그중 하나였다"고 전했다.

의학·과학계는 반발…"자폐환자 증가와 타이레놀 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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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의료계와 과학계에서는 타이레놀과 자폐증 발생이 무관하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오히려 이런 음모론 맹신이 산모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 산부인과협회(ACOG)는 "아세트아미노펜의 임신 중 위험성에 대한 연구는 수십년간 이어져 왔지만, 임신 중 어느 시기에 복용하든 태아의 신경 발달장애를 유발한다는 공신력 있는 연구가 단 한건도 없었다"며 "지난해 200만명이 넘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 사용과 어린이의 자폐증, 지적장애 위험 사이의 유의미한 연관성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지적했다.


세계보건기구도 성명을 통해 "현재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 사용과 자폐증 사이의 가능한 연관성을 확인하는 결정적인 과학적 증거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아세트아미노펜 사용과 자폐증의 연관성을 조사하기 위해 광범위한 연구가 진행됐지만 현재까지 일관된 연관성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확인되지 않은 음모론으로 인해 산모들이 타이레놀 사용을 꺼리게 되면 보건상 위험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미국의 산모·태아 의학학회(SMFM)는 "아세트아미노펜은 임신 중 통증과 발열을 치료하는데 적절한 약물임을 재확인했다"며 "임신 초기 발열이 났는데 약물치료를 하지 않으면 유산, 선천적 기형, 조산의 위험이 커지며 통증을 치료하지 않으면 산모의 우울증, 불안, 고혈압으로 이어질 수 있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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