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락시장 5대 청과(채소·과일) 도매법인의 합산 매출은 1886억원이었다. 전년 대비 11% 증가한 것이다. 이상기후로 생산량이 줄어 농산물 가격이 급등해 '금(金)사과' '금(金)배'라는 유행어가 나올 정도로 소비자 부담이 컸지만 도매법인들은 호실적을 기록했다.
도매법인은 농산물 유통비용을 부풀리는 주범으로 꼽힌다. 생산자가 위탁한 농산물을 경매에 부쳐 경락 가격이 정해지면 이 중 4~7%를 상장수수료로 받는데, 도매법인은 경락 가격이 높을수록 수익이 늘어나는 구조다. 농산물 시세가 급등락해 농가의 수익이 쪼그라들어도 이를 방치하고 '앉아서 수수료 장사를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 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 도매법인 간판. 김흥순 기자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가 지난해 발표한 '국내농산물 유통구조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최대 규모인 서울 송파구 가락동 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에 있는 민간 도매법인 5곳(서울청과·중앙청과·동화청과·한국청과·대아청과)의 영업이익률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간 평균 23.87%를 기록했다.
또 전국 32개 공영시장의 도매법인 중 가락시장을 제외하고 재무제표를 공개한 8개 업체(서부청과·동부청과·효성청과·대양청과·두레청과·호남청과·구리청과·인터넷청과)의 영업이익률도 같은 기간 평균 12.48%로 집계됐다. 지난해 기준 1% 미만에서 3% 수준의 영업이익률을 올렸던 대형마트와 쿠팡 등 유통 채널은 물론, 주요 식품사의 평균 영업이익률 6.9%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소비자단체협의회는 "도매시장법인은 재고 등의 위험을 부담하지 않고 거래에 대한 수수료를 받아 수익을 얻는다"며 "(이 같은 구조를 고려할 때) 이들의 영업이익률이 과도하지 않은지 의구심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도매법인은 경매가 이뤄진 뒤 수수료를 제외한 낙찰 금액을 출하자에게 바로 지급한다. 이때 농산물을 낙찰받은 중도매인이 대금 결제를 지연하면 이자를 징수한다. 백혜숙 지속가능국민밥상포럼 대표는 "처음에는 도매법인과 중도매인이 동등한 관계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이자 문제로 중도매인이 도매법인에 사실상 예속된 형태"라며 "도매법인은 경매 외에도 중도매인에게 징수하는 이자에서 벌어들이는 소득이 높아 영업 외 수익도 많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서울청과는 지난해 영업 외 수익 30억원 중 이자수익으로 약 15억원을 벌었다. 2021년 3억원 수준에서 5배 가까이 상승한 수치다.
도매법인은 리스크는 크지 않고 안정적인 현금 창출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대형 자본이 탐을 내고 있다. 서울청과(고려제강), 중앙청과(태평양개발), 동화청과(신라교역), 한국청과(더코리아홀딩스), 대아청과(호반그룹) 등 가락시장 내 민간 도매법인 모두 농업과는 무관한 철강, 건설, 원양어선, 경영컨설팅 업체가 대주주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개된 자료를 취합하면 이들 5개 법인은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배당금으로만 총 849억원을 지급했다. 이는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이들 법인의 당기순이익을 모두 합친 1348억원의 63%에 달하는 액수다. 소비자단체협의회 측은 "도매시장법인들은 농산물 유통을 통해 벌어들인 많은 이익을 단순 배당으로 유출해 주주들의 배를 불리고 있다"며 "농산물 유통 발전을 위한 노력과 투자를 통해 소비자 및 생산자와 상생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우리나라 공영도매시장 제도는 비합리적인 농산물 가격 결정 구조를 바로잡겠다는 취지에서 1985년 도입됐다. 이전까지는 농가에서 자율적으로 중간 위탁상에게 물량을 넘겨 농산물을 판매했고, 위탁상들은 정보 우위를 이용해 가격을 후려치거나 대금 지급을 지연시켰다. 정부는 생산자의 피해를 막기 위해 1976년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 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을 제정했다. 이후 전국에 33개 공영도매시장을 설립하고 경매 방식을 통해 가격이 투명하게 결정될 수 있도록 하는 상장거래방식(경매)을 도입했다.
경매제에서는 생산자가 직접 협상하는 대신 소수의 도매시장법인이 판매 대행을, 중도매인이 구매대행을 각각 맡아 경매 입찰을 통해 가격을 정한다. 설계만 놓고 보면 공정 거래의 제도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그날그날 시장에 출하되는 물량과 경매에 참여하는 중도매인의 수요에 따라 입찰가가 정해지기 때문에 가격이 널뛰기를 하고 경매 참가자 간 가격 담합 등 의혹이 불거졌다.
정부는 경매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2000년 '시장도매인제도', 2012년 '정가·수의거래' 방식을 도입했다. 시장도매인제도는 농민이 시장도매인과 직접 사전에 협상해 농산물을 유통·거래하는 방식으로, 경매제보다 유통 과정이 한 단계 줄어 비용을 낮출 수 있다. 또 미리 가격을 합의하기 때문에 시세가 안정적이다. 정가·수의거래도 경매 과정 없이 농산물의 가격을 미리 정하고 거래(정가)하거나 상대방을 특정한 상태에서 거래(수의)하는 방식이다. 경매제보다 가격 변동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여전히 경매제의 지위는 공고하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도매시장 통계연보에 따르면 전체 공영도매시장(청과부류)에서 물량 기준 정가·수의 거래 비중은 2012년 9%에서 지난해 20.4%까지 늘었으나 여전히 경매제가 80%가량을 차지한다. 정가·수의거래가 효과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경험 많고 능력 있는 경매사가 확충돼야 하지만 경매사 자격증 취득자와 실제 경매사 수 비율(청과부문)은 2011년 28.4%에서 2022년 23.2%로 하락했다.
시장도매인제도 일부 시장에서만 운영돼 효과가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가락시장의 경우 경매에 의한 거래(청과부문·물량 기준)가 82%, 정가·수의 방식이 약 10%, 상장예외거래가 7.5%를 차지하고 있다. 전체 도매시장 중 유일하게 시장도매인제를 운영하는 서울 강서시장의 경우 시장도매인제가 59.5%, 경매제가 31.2%다. 그러나 전체 공영도매시장 중 강서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청과부류 거래액을 기준으로 지난해 9.5%밖에 되지 않아 상징성이 떨어진다.
도매시장법인이 전체 시장의 경매를 도맡는 구조에서 별다른 견제 없이 소수 업체가 40년간 지위를 유지하다 보니 독과점에 대한 문제 제기도 끊이지 않는다. 현행 농안법에서는 중앙도매시장에 두는 도매시장법인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또는 해양수산부 장관과 협의해 지정하고, 5년 이상 10년 이하의 범위에서 지정 유효기간을 설정할 수 있다고 정했다.
하지만 유효 기간이 만료된 법인에 대한 재지정 절차나 구체적인 평가 기준은 명시하지 않았다. 가락시장의 5개 도매법인은 시장 개설 이후 한 번도 교체된 적이 없다. 그 사이 이들 업체가 16년간 수수료 담합을 벌인 사실이 적발돼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100억원대 과징금 제재가 내려졌으나 퇴출당하진 않았다.
이 같은 독점 구도를 깨기 위한 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22대 국회 들어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박정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 발의로 지난 6월 도매시장법인 지정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농안법 일부 개정안을 제안했다. 도매시장법인 지정 시 공모를 통해 사업자를 선정하고, 5년 이하 범위에서 재지정 유효기간을 설정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또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동일 시장 내 도매법인 상한을 정하고 법인 재지정 시 농산물 가격 안정, 농업인 권익 보호, 농수산물 도매유통 발전을 위해 필요한 조건을 붙일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개정안은 5개월 가까이 계류 중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에서 정가·수의 매매를 확대하라고 하지만 도매법인은 돈이 많이 들고 베테랑 경매사 충원 등 인력이 많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안정적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경매제를 지속적으로 운영하려고 한다"며 "이를 위해 도매법인이 다양한 방식으로 로비를 하고 있어서 수십 년째 경매제의 공고한 지위가 흔들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9월 서울 송파구 가락동 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 채소동에서 경매가 이뤄지는 가운데 농산물 중개업자인 중도매인들이 상품을 살펴보고 있다. 김흥순 기자
<날씨는 죄가없다 5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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