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조세 구조개혁, 상속세 중심에서 보유세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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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재산세 구조는 국제 기준과 뚜렷하게 어긋난다. 부동산 보유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대비 낮지만 상속세율은 세계 최고 수준에 해당한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최고 세율을 50%로 규정하고, 대주주 지분 할증까지 적용되면 실질 세율이 60%를 초과할 수도 있다. 반면 보유세 실효세율은 GDP 대비 약 0.8%로 OECD 평균(약 1.8%)의 절반 수준이다. 조세의 구조가 상속세에 과도하게 의존해 있고, 이마저도 실효성이 떨어지는 구조다.


현실에서 상속세 부담은 계층에 따라 실질적으로 불평등하게 작용한다. 자녀 명의의 법인을 설립하거나 상업용 건물·주식 지분을 미리 이전하고, 생전 증여를 분산해 과세표준을 낮추는 절세 경로가 십분 활용된다. 결과적으로 회피 수단이 있고 이를 잘 활용하는 고자산층은 부담을 줄이고, 그렇지 못한 중산층만이 고율의 세금을 정면으로 부담하는 역설이 발생한다.

강남구에 고급 카페 등 소형 상업시설이 우후죽순 들어서는 현상은 이런 불공정 조세 구조의 결과에 대한 방증으로 실소를 자아낸다. 단순 상권 활성화가 아니라 부동산을 사업체로 전환해 과세 가치를 낮추는 전략이 광범위하게 악용되고 있다. 높은 상속세와 낮은 보유세가 맞물려 만들어낸 '합리적 절세'의 전형이다.


반면 영국이나 미국 등 선진국은 상속세보다 보유세와 양도차익 과세를 중심으로 조세 구조를 설계한다. 영국의 상속세율은 40% 정도지만 보유세와 양도소득세가 조세 기반을 안정적으로 지탱한다. 미국도 상속세 과세 대상은 상위 극소수에 한정되고 지방정부의 부동산세가 실질적 재원 역할을 한다. 핵심은 단순히 높은 명목세율이 아니라 실질적 세금 징수력과 회피 여지를 최소화하는 설계다.


이제 우리 역시 이러한 방향으로 조세 구조의 축을 옮길 필요가 절실하다. 우선 지방세법과 종합부동산세법을 개정해 보유세 실효세율을 단계적으로 OECD 평균 수준까지 올리는 방안이 현실적이다. 예로 향후 5년간 매년 0.2%포인트씩 인상해 0.8%에서 1.8%로 상향하는 시나리오를 설정할 수 있다. 이 경우 보유세 세수는 약 30조원에서 55조원 수준으로 확대될 것으로 추정된다. 인상 폭을 소유 규모에 따라 차등 적용하면 중산층의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고액 자산가의 실질 부담을 높일 수 있다.

이와 병행해 상속세율은 현행 50%에서 30~40%로 조정하되 회피 수단 차단 장치는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가업승계 특례'의 적용 요건을 엄격히 재설계하고, 생전 증여에 대한 합산 기간을 현행 10년에서 20년으로 늘려 편법 상속을 줄여야 한다. 또한 상속세 과세 대상 평가 시 사업체 전환 자산의 실질 가치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현행 카페 등 상가 활용 절세 구조를 차단할 수 있다. 과세의 공정성은 평등을 외치는 정치적 수사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정교한 제도 설계와 전략적 접근을 통해 달성되는 것이다.


핵심은 세율의 높낮이가 아니라 과세 기반의 균형이다. 상속세만 높게 유지하면서 회피 수단을 방치하면 조세 정의와 효율성 모두 훼손된다. 반면 보유세 중심의 구조 개편은 자산 보유 자체에 합리적 세 부담을 부과하고, 조세 형평성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자산 불평등을 완화하고 부의 대물림을 줄이는 데는 개별 세목의 명목세율보다 조세 체계 전반의 상호 효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정밀한 설계가 더욱 중요하다.


강남의 카페 밀집 현상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왜곡된 세제 구조가 만들어낸 시장 신호다. 정치권이 진실로 부의 대물림 억제를 원하는 것이라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높은 상속세율이 아니라 실효성 있는 보유세와 회피 차단을 결합한 총괄적 조세 개혁일 것이다.


김규일 미시간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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