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Next]밀가루 원가 하락해도 베이글 가격 '44% 급등'…칼 빼든 이재명

이재명 대통령 "식료품 물가 상승, 정부 통제 상실" 질타
할인행사 빌미로 가격 부풀린 대형마트 조사 착수
빵값 급등 원인…밀·설탕·달걀 시장도 정밀 점검

정부가 '고삐 풀린 먹거리 물가'에 대해 본격적으로 칼을 빼 들었다. 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면서 원자재 가격 인상을 이유로 수년째 식품 가격 인상이 이어진 데다 기후변화를 빌미로 농산물 가격마저 널뛰기를 반복했는데, 이 과정에서 유통 기업들이 부당한 이익을 챙긴 정황이 포착되면서다. 최근 국제 원자재 가격이 하락세인 가운데 이재명 정부가 예고 없이 단속에 나서면서 유통업계 전반으로 물가 인하 압력이 확대될지 주목된다.


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빵값의 원가'를 이루는 밀·설탕·달걀 등 식품 원재료 시장 전반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전날 공정거래위원회는 CJ제일제당, 사조동아원, 대선제분, 삼양사, 삼화제분, 한탑 등 7개 제분사에 대한 현장 점검을 진행했다. 이들 업체가 가격을 사전 협의하거나 출하량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담합을 벌였는지 확인하기 위한 조치다. 밀가루는 빵·라면·과자 등 주요 가공식품의 기본 원재료로, 가격 변동이 소비자 물가에 반영된다.

공정위, 설탕·밀가루·계란까지 가격 조사

앞서 공정위는 설탕 가격 담합 혐의에 대한 제재 절차 착수도 예고했다. CJ제일제당, 삼양사, 대한제당 등 국내 시장점유율 90%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 제당사가 대상이다. 달걀 유통 구조 역시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산지 가격 변동이 크지 않은데도 소매가가 떨어지지 않는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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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가 주목하는 핵심은 '가격 경직성'이다. 국제 원자재 가격이 하락해도 국내 식품 가격이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 현상이다. 뉴욕상품거래소 기준 원당 가격은 2023년 10월 t당 593달러에서 올해 10월 357달러로 약 40% 하락했다. 소맥(밀) 가격도 같은 기간 210달러에서 185달러로 낮아졌다. 그러나 국내 제빵·제과류 가격은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한국신용데이터에 따르면 대표적인 인기 품목인 베이글 가격이 최근 3년 새 44% 급등했고 소금빵과 샌드위치 역시 30% 이상 올랐다.


대형마트 '눈속임 할인' 의혹

공정위는 또 정부의 농산물 할인지원 사업을 악용해 가격을 부풀린 혐의로 주요 대형마트를 대상으로 조사에 착수했다. 지난달 이마트와 롯데마트 본사에 조사관을 보내 가격 관련 자료를 확보했고, 홈플러스를 포함한 나머지 업체에 자료 제출을 요청했다. 이는 감사원이 지난달 발표한 농림축산식품부에 대한 정기감사 결과, 대형유통업체 6곳이 정부 할인지원 사업에 맞춰 2023년 6월부터 12월 사이 할인 대상 313개 품목 가운데 132개의 가격을 행사 직전 인상했다고 지적한 데 따른 것이다.

농산물 할인지원 사업은 2020년 7월 도입된 정책으로 유통업체가 농산물에 20% 할인 행사를 하면 정부는 업체에 구매자 1인당 1만원 한도에서 할인액을 보전한다. 지난해까지 관련 예산 6000억원을 집행했고 올해 2280억원, 내년 1080억원이 추가로 편성됐다. 그러나 해당 사업이 장바구니 물가를 안정시키겠다는 당초 취지와 달리 대형유통사의 가격 부풀리기에 악용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은 올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감사원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대형마트가 정부의 20% 할인 지원 행사가 시작되자 당일 오전 시금치 가격을 33.8%나 올린 뒤 이를 할인 판매하는 눈속임으로 부당 이득을 챙겼다고 짚었다.

롯데마트 그랑그로서리 은평점 농산매대 전경. 롯데마트 제공

롯데마트 그랑그로서리 은평점 농산매대 전경. 롯데마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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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물 할인행사를 둘러싸고도 비슷한 의혹이 제기됐다. 앞서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는 지난달 중순 추석 제수용품 물가를 조사한 뒤 "정부가 추석 민생안정대책으로 도축·출하 확대와 할인지원을 추진하고, 축산물에 대한 특별한 이슈가 없는데도 매년 가격이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며 "대형마트가 실제로는 가격을 높게 책정한 뒤 큰 폭의 할인을 적용해 소비자들이 마치 저렴하게 구매하고 있다고 인식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로 산적용·일반육 소고기의 대형마트 가격이 5만9732원으로 백화점(5만4012원)보다 5720원 비싸고, 탕국용·양지 소고기도 대형마트 판매 가격(5만3223원)이 전통시장(3만2613원)보다 1.6배 높다는 점을 들었다. 이 밖에 수산 분야 할인지원 행사인 '대한민국 수산대전'에서도 2022년부터 3년간 정부 지원 예산 약 2260억원 중 73%(1648억원)가 이마트·쿠팡 등 대형유통업체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나는 등 문제점이 계속 지적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 같은 지적에 대해 "현재 공정위 조사가 진행 중으로 관련 자료 제출 등에 성실히 협조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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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정위의 전방위 조사는 이재명 대통령의 직접 지시에 따른 것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식료품 물가 상승이 본격화된 시점은 2023년 초인데, 그 시기부터 왜 오르기 시작했는지 근본적 의문을 가져야 한다"며 "정부가 통제 역량을 상실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질타했다. 이어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을 향해 "담합이 이뤄지고 있을 가능성도 크다. 가격 조정 명령도 가능한가"라고 연이어 질문하며 공정위의 적극적 개입을 주문했다.


이후 공정위는 원재료 시장의 경쟁 실태와 유통 구조, 가격 담합 여부를 전면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단순히 개별 품목의 담합 여부를 넘어서 유통 산업 전반의 '묵시적 카르텔'이 생활물가를 왜곡하고 있는지를 구조적으로 점검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유통업계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한 제분사 관계자는 "원자재가 내려도 기업 간 계약 거래 구조와 환율, 물류비, 인건비 등 변수가 많아 즉각적인 인하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설탕 업계는 지난 7월 B2B(기업 간 거래) 기준으로 백설탕·갈색설탕 가격을 평균 4.4%(CJ제일제당·대한제당), 삼양사는 4.0% 내렸다고 밝혔다.





임혜선 기자 lhsro@asiae.co.kr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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