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 간 이해 충돌 최소화…도시국가 생존 비결은 '선점'"[규제없는도시, 메가샌드박스]⑧

[인터뷰] 백인기 코트라 싱가포르 무역관장
도시국가 싱가포르, 신산업 이슈 선점에 특화
고위 공무직 겸직 제도…부처 간 칸막이 해소
'수익 창출'에 초점 맞춘 정책 효율
"민주 절차 지키며 속도내는 韓 혁신 모델 필요"

"싱가포르는 정책 방향을 설정하고 이슈를 선점하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새로운 이슈가 등장하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제도를 정비해 '선도국가'의 이미지를 굳혀 나가죠."


지난 1일 코트라(KOTRA) 싱가포르 무역관에서 만난 백인기 관장은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싱가포르가 규제 없는 도시를 만드는 추진력을 이같이 평가했다. 현지 주요 인사들과 교류해온 백 관장은 "이 나라의 규제 혁신 비결은 빠른 정책 결정 속도와 철저히 경제 논리로 움직이는 시스템에 있다"고 진단했다.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인구가 적은 도시형 국가다. 그는 "모든 부처가 새로운 이슈를 선점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긴장감이 내재돼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는 글로벌 시장조사기관들이 발표하는 'AI 혁신 지수'에서 꾸준히 1·2위를 다투고 있다. 자체적인 AI 원천 기술을 가진 기업이 많지 않음에도 높은 평가를 받는 배경에는 정부 주도의 발 빠른 규제 기반 조성이 한몫했다. 일관성 있고 신뢰 가능한 정책과 인프라 구축이 국가 전체의 AI 역량을 끌어올렸다는 분석이다.


백 관장은 신산업 정책이 빠르게 추진될 수 있었던 이유로 '정부 부처 간 칸막이 해소'를 꼽았다. 현재 싱가포르는 총리가 재무부 장관을 함께 수행하고 인력부 장관이 통상산업부 제2장관을 겸직하는 등 고위 공무원들이 여러 부처의 역할을 동시에 맡고 있다.

그는 "부처 간 이해 충돌이 최소화되면서 새로운 산업이 나오더라도 통합적인 시각에서 대응할 수 있다"며 "부처뿐만 아니라 학계도 총장 겸직 등 제도적 유연성을 인정해 연구 과제의 벽을 허물었다. '제도의 승리'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정책 출발점이 '수익 창출'에 맞춰져 있는 점도 싱가포르의 핵심 경쟁력으로 꼽았다. 백 관장은 "싱가포르는 정부가 방향을 제시하고 민간이 그 위에서 실험하는 구조가 완전히 자리 잡은 나라"라며 "상용화 의지가 강하고 실패에도 관대한, 철저히 이윤 중심의 기업형 도시국가"라고 강조했다.


싱가포르 혁신 모델이 가진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를 한국에 그대로 옮겨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백 관장의 판단이다. 인구 규모와 국가 체제뿐 아니라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는 방식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싱가포르는 강력한 정부 주도로 운영되는 만큼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이 정책에 반영되는 과정은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속도를 잃지 않으면서도 민주주의 절차를 지켜야 한다"며 "우리만의 '민주적 혁신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인기 코트라 싱가포르 무역관장. 코트라 제공

백인기 코트라 싱가포르 무역관장. 코트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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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우수연 기자 yes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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