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열차 제작감독 한 업체가 독식"…안전 위해 기준 손봐야

2017년 후 고속철도 제작검사 로테코 나홀로 수주
"과거 수행실적 배점 입찰에 결정적 영향"

고속열차를 제작할 때 의무적으로 필요한 감독 업무를 특정 업체가 독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 등 고속철도 운영사가 적용하고 있는 입찰 기준이 특정 업체에만 유리한 구조여서 벌어진 결과다. 제작감독 업무는 열차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만큼, 경쟁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관련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2017년 이후 코레일(KTX)과 수서고속철도(SRT) 운용사 SR이 진행한 고속철도차량(EMU-260·320) 제작감독 용역을 ㈔한국철도차량엔지니어링(로테코)이 모두 수주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별로 20억~30억원 규모로 계약별 부수물량까지 모두 합하면 지금껏 계약한 금액은 총 250억원에 달한다. 코레일이 4건, SR이 1건 등 총 5건을 입찰에 부쳤는데 모든 일감을 로테코에서 가져갔다. 가장 최근인 지난달 진행한 입찰 건도 로테코가 가져갔다.

서울 중구 서울역에서 중앙선 KTX 이음 서울역 연장 운행 열차를 타기 위해 시민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서울 중구 서울역에서 중앙선 KTX 이음 서울역 연장 운행 열차를 타기 위해 시민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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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차량 제작검사는 현대로템이나 우진산전 같은 열차 제작업체가 형식승인을 받은 대로 제작했는지를 점검하는 일종의 감리 업무로 철도안전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국내에서는 로테코와 케이알이앤씨(케이알) 등이 전문 검사기관으로 지정돼 있다. 로테코는 1960년대 사단법인으로 출범해 지금껏 철도차량 검사나 안전진단 업무 등을 해왔다. 주요 간부진은 과거부터 코레일 퇴직자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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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테코에서 고속열차 제작감독 용역을 지속적으로 수주하게 된 것은 코레일의 입찰 기준 때문이다. 코레일은 과거 수행실적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관련 실적을 로테코만 갖고 있는데, 이 기준을 고집하면서 의미 있는 경쟁 구도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다. 코레일이 마련한 평가기준에 따르면 10억원 이상 대형 계약의 경우 수행실적(10점)과 함께 기술능력(25점), 경영상태(30점), 업무중첩도(5점) 등을 따진다.


이때 로테코는 과거 수행실적 점수로 4점을 더 받는다. 이는 매번 입찰에서 로테코가 사업을 수주하는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 경쟁업체의 설명이다. 이 점수 격차는 로테코와 경쟁 관계인 케이알에서 코레일이나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현 심사기준이 공정치 못하다고 적극적으로 지적하면서 줄어든 수준이다. 원래는 6점 차이였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 본사 로비. 연합뉴스

한국철도공사(코레일) 본사 로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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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을 비롯해 각 지역 교통공사에서 발주하는 일반열차 제작감독 업무는 로테코나 케이알이 입찰 결과에 따라 나눠 감독하고 있다. 열차 제작과정에서 의무사항인 제작감독을 한 업체가 독점할 경우 비용 상승은 물론 열차 안전에도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 국토교통부가 전문 검사기관 세부 지정기준을 정하면서 각 검사원 경력이나 인력 기준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고속철도 차량의 경우 책임검사원 3명, 선임검사원·검사원 30명 이상 등이다. 코레일도 심사 기준에 검사원의 업무중첩도를 둬, 가급적 중복해서 일을 하지 않게 한다. 이는 제작감독 업무의 난도가 높은 편은 아니지만 검사업무를 꼼꼼히 하는 게 중요해서다.

코레일은 2012년 감사원 지적에 따라 고속차량 분야에서 자격요건을 강화했다가 지난해 공정위 권고에 맞춰 개선한 결과라며 안전을 담보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심사기준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는 "기술용역 적격심사 사업수행능력 평가 기준을 보완하기 위해 외부 전문기관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용역 결과를 검토해 방침을 세워 기준 등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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