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이 없으면 기업들의 도전은 현상에 그칩니다. 정부가 매년 새로운 정책을 내놓으면서 한 단계씩 앞으로 밀고 갈 수 있었습니다. 물류나 공단, 항만 같은 산업 전반에서 자율주행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게 된 밑바탕이 됐습니다."
런쉐펑 화리즈싱(華礪智行) 부사장은 최근 중국 우한 경제기술개발구에서 아시아경제와 만나 기업 성장에서 정부의 역할의 중요성을 이같이 강조했다. 화리즈싱은 차량·도로·클라우드 통합 플랫폼을 구축하며 중국의 로보택시 상용화에 깊숙이 관여한 기업이다. 차량과 차량, 차량과 도로를 연결하는 5G 기반의 차량사물통신(V2X) 솔루션을 제공한다. 우한을 넘어 전 세계 50개 도시로 사업을 확장했다. 현재 우한 지역 로보택시는 약 400㎞ 구간 도로에서 운행 중인데, 화리즈싱은 시내에서 고속도로까지 영역을 넓혀 주행 구간을 1만㎞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화리즈싱은 설립된 지 불과 10년 정도인 스타트업이지만 기술력은 상당한 수준이다. '인공지능(AI) 전문가' 추즈쥔 최고경영자(CEO)와 '스마트 네트워크·자율주행 전문가' 런쉐펑·안더시 부사장 등 3명이 이끄는 화리즈싱은 2014년 캐나다에서 설립된 뒤 2017년 우한으로 본사를 옮겼다. 세 사람 모두 중국 최고의 명문대이자 '중국의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이라고 불리는 칭화대를 졸업한 수재들이다. 중국으로 온 지 6년 만인 2023년 최고의 권위를 지닌 국가급 혁신상을 받았다.
런쉐펑 화리즈싱(華礪智行) 부사장이 자율주행을 가능케 한 V2X 솔루션을 소개하고 있다. 화리즈싱은 로보택시뿐만 아니라 항만, 공단, 광산 등 산업 현장에서도 자율주행 기술을 구현할 수 있다. 장희준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기업이 크기 위해선 정부가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정설이지만 규제해소를 위한 개입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국의 자율주행 기술이 여전히 시범운행 단계에 머무는 사이, 중국은 10년도 되지 않아 도로·물류·광산·항만·철도 등 사실상 전 산업 영역에서 레벨4 자율주행을 구현했다. 창업 10년이 채 안 된 화리즈싱은 중국·미국·캐나다·멕시코 등 4개국, 50개 도시로 사업을 확장하며 급성장했다.
신생 기업이던 화리즈싱이 짧은 시간 안에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부의 정책 명확성과 제도적 신뢰가 있었다. 런 부사장은 "발전 초창기에는 정부의 정책 지원이 있었지만 국유 기업의 자본 투자가 대단히 유의미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정부의 정책 방향성이 명확하니 국유 기업들도 과감히 자본을 투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책의 방향성이 분명하니 돈이 움직였고, 그 돈이 산업의 속도를 결정했다. 중국 정부는 자율주행을 신에너지·스마트 차량 산업의 핵심 축으로 규정하고 중앙과 지방이 역할을 나누는 체계를 세웠다. 지난해 공업정보화부(MIIT)는 베이징·상하이·우한·선전 등 20개 도시를 '차·도로·클라우드 통합 시범도시'로 지정해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했다.
도시별 조례에는 자율주행차 운행 기업이 책임보험을 마련해야 한다는 조건이 포함돼 있다. 베이징·우한 등 일부 도시는 차량당 일정 금액 이상의 상업보험을 의무화하고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즉시 중단보다 원인 분석과 개선 후 재개를 권장하는 절차를 도입했다. 사고 리스크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인 셈이다.
5G 기반의 V2X(차량·도로·사물 간 실시간 정보통신) 솔루션을 제공하는 화리즈싱의 V2X 단말기. 우한 시내 신호등마다 설치된 이 단말기를 통해 차량과 클라우드가 연결돼 도로 정보를 실시간으로 주고받는다. 장희준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MIIT의 시범도시 지정 이후 각 지역 정부는 인프라 구축에 속도를 냈고 공공자금과 민간자본이 동시에 움직였다. 우한시는 시 발전개혁위원회를 중심으로 170억위안 규모의 '차·도로·클라우드 통합 실증사업'을 승인하며 도시 전체를 실험의 무대로 올렸다. 정책의 명확성이 신뢰를 만들었고 이는 산업 강화로 이어졌다.
이 회사는 로보택시뿐만 아니라 지난해 스마트·대형 물류 등으로 서비스 범위를 확장했다. 내몽골 자치구 등 일부 지역에선 '자율주행 트럭'까지 상용화를 실현하고 있다. 화리즈싱은 이미 공단이나 광산·항구·철도 등에서도 레벨4(특정 구간에서 완전 자율주행)를 구현할 만큼 데이터를 축적했다.
회사 관계자는 "사각지대 문제를 안고 있는 대형 트럭도 실질적으로 무인화를 구현할 수 있다"며 "아직 운전석에 안전원을 태우지만 순전히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이유"라고 했다. '무인 자율주행' 트럭 역시 제도만 마련되면 언제든지 일반 공도에서 주행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화리즈싱이 구현한 스마트 도로는 자율주행에 더해 '최적화 서비스'도 제공한다. 런 부사장은 "화물 트럭들의 운송 경로, 기사 배정, 에너지 효율 등 정보들이 클라우드를 통해 최적화된다"며 "이 시스템이 적용된 현장에서 업무 속도는 80% 개선됐고 에너지는 15% 이상 절감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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