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부모자격'을 가르치지 않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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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변하지 않았는데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순간, 비극은 반복된다."


기자가 얼마 전 만난 아동학대 피해자는 성인이 된 지금까지 어릴 적 거듭된 학대로 고통받고 있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학대 아동 100명 중 16명은 부모가 바뀌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가 재학대에 시달린다.

현재 시스템은 아동학대를 사건으로만 취급한다. 신고가 접수돼 수사가 진행된 뒤 재판을 통해 부모에게 처벌이 내려지면 서류상 사건은 종결된다. 법의 심판이 끝나면 아이는 부모의 집으로 돌아가 또다시 학대의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 이유다.


학대의 고리를 끊으려면 부모가 변해야 한다. 건강한 양육 방식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 없이 학대 부모를 아동과 잠시 떼어놓거나 처벌하는 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는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부모가 돼야 한다'고 요구만 할 뿐 '부모의 자격'을 진지하게 묻거나 가르치는 것은 부족했다.


핀란드는 '네우볼라(Neuvola)'라는 공공 의료기관에서 임신 순간부터 아이가 학교에 가기까지 아이와 부모의 건강, 성장 과정을 전담하는 전문 간호사의 관리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네우볼라는 산부인과와 어린이병원, 정신건강센터 역할을 종합적으로 수행하는 곳으로 사실상 임신과 동시에 부모교육이 이뤄지는 셈이다.

우리나라에도 부모교육 프로그램이 있다. 성평등가족부의 가족센터와 보건복지부의 육아종합지원센터는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대화법, 양육법, 부모로서 역할 정립 등에 관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들에 참여하려면 개인이 자발적으로 신청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정작 교육을 받아야 할 부모가 아닌, 이미 좋은 부모가 더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교육을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


해외 사례와 같이 임신 혹은 출산과 동시에 부모교육이 이뤄지도록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핀란드처럼 새로운 기관을 만들 필요도 없다. 부모의 관심과 의지가 가장 높은 임신기나 영유아기에 이미 운영 중인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이 시기에 맞춰 부모급여, 아동수당 등 정부의 현금성 지원을 받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부모교육을 받도록 하면 어떨까. 수당은 신청하지 않으면 손해라는 인식이 팽배하지만, 부모교육의 경우 존재 자체를 모르는 이들이 많다. 이 둘을 연계한다면 개인의 의지에만 기댔던 부모교육을 우리 사회의 보편적 제도로 정착시킬 수 있지 않을까.





박승욱 기자 ty161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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