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도 Z세대의 명품 대신 '듀프(dupe·대체품)'를 택하는 트렌드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듀프는 '모방'을 뜻하는 듀플리케이션(Duplication)에서 파생된 단어로, 고가 브랜드의 디자인이나 기능을 본떠 보다 저렴한 가격에 출시된 유사 제품을 의미한다. 가성비를 중시하면서도 유행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젊은 세대의 심리가 맞물리며 듀프 제품은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최근 발표한 '2025 홀리데이 소비 전망(Holiday Outlook 2025)'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Z세대 소비자의 82%가 이번 연말 '듀프' 제품을 구매할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Z세대의 59%는 여전히 유명 브랜드를 선호했으나, 41%는 더 저렴한 자체 상표(Private Label·PL) 제품을 구매할 의향을 보였다. 이는 인플레이션과 경기 불확실성 속에서도 유행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합리적 소비' 트렌드와 맞물린다. 예컨대 중국 팝마트의 인기 피규어 '라부부' 대신, 이를 본떠 만든 '라푸푸'를 구매하는 식의 소비가 대표적이다.
보스턴에 거주하는 20대 소비자 에밀리 황(Emily Huang) 또한 지난해 상하이 유학 시절, 구찌·프라다·고야드 지갑을 본떠 만든 듀프제품을 구매해 지인들에게 선물했다. 가격은 10~20달러(약 1만4000~2만8000원) 수준이었다. 황은 USA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요즘은 잘 만든 듀프 제품이 많다"며 "친구들도 지갑 선물을 좋아했고, 자세히 보지 않으면 거의 진품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수입이 많지 않아 명품은 살 수 없지만, 내가 산 듀프 제품은 대부분 품질도 만족스러웠다"며 "유행이 짧을 게 뻔한 아이템이라면 굳이 유명 브랜드 제품을 살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황은 크록스 모양의 신발과 프라다 선글라스를 본뜬 제품 등도 구매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듀프 현상은 특히 Z세대를 비롯한 젊은층에게서 두드러진다. 고가 브랜드 제품을 가성비 있게 즐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글로벌 컨설팅사 사이먼쿠처(Simon-Kucher)의 시카 자인(Shikha Jain)은 "듀프는 유행 아이템을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제품"이라며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는 고품질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하길 원하기 때문에 듀프는 이들을 겨냥한 트렌드"라고 설명했다. 이어 "듀프는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모방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문화'에 가깝다"며 "정품을 사칭하는 위조품과는 구별된다"고 덧붙였다.
국내서는 화장품을 중심으로 듀프 소비가 확산하고 있다. 다이소가 지난해 뷰티 브랜드 손앤박과 협업해 선보인 '아티스프레드 컬러밤'은 샤넬 뷰티 제품의 저렴이 버전으로 주목받으며 품절 사태를 빚은 바 있다. 샤넬 제품은 6만원대인 반면 다이소 제품은 3000원에 판매돼 단숨에 인기 상품으로 떠올랐다. 또 최근에는 명품 브랜드 향수와 자라(ZARA) 향수를 비교하는 영상도 유튜브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성비 중심의 소비가 확산하면서 듀프 현상에 대한 인식도 점차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3~69세 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결과, 듀프 현상에 대해 긍정적으로 본다는 응답은 48.8%로 부정적 의견(9.5%)보다 훨씬 높았다.
특히 듀프 제품은 ▲경제적 부담을 줄이는 합리적 소비(71.8%) ▲고품질 제품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선택지(56.4%)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또 비싼 가격을 주고 잠깐 유행하는 아이템을 사기보다, 듀프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본다는 응답도 55.8%였다.
향후 듀프 시장이 더욱 성장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영국의 데이터분석 플랫폼 셸프트렌드(Shelftrend)는 듀프의 대표 카테고리인 '듀프 향수' 시장 규모가 올해 약 27억1000만 달러(약 3조8693억원) 수준이며, 2034년까지 연평균 15.8%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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