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맥]대학을 망쳐온 대학정책을 바로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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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직전 3개년도 물가상승률 1.5% 이내라는 등록금 인상의 상한 규제가 생겼다. 이 규제는 2025년부터는 1.2%로 강화됐다. 교육부는 등록금을 인상하는 대학을 일부 국가장학금 수혜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것이 근 16년 동안 대부분 대학이 등록금 인상을 못 한 이유이다. 많은 대학이 임금을 삭감해야만 했고 교육환경 개선, 시설 투자도 언감생심이 됐다. 그 사이 소비자 물가는 1.7배로 올랐다.


그렇다면 근 16년이나 정체된 등록금은 여전히 부담일까. 국가장학금을 한번 보자. 10개의 소득분위 중 9분위까지, 가계 월 소득이 800만원이 넘어도 받을 수 있다. 교내 장학금도 있다. 대학은 등록금 수입 10%에 이르는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교내장학금 역시 국가장학금과 연계돼 줄이기 어렵다. 이 많은 장학금, 당연히 줘야 하는 거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솔직히 물어보자. 이런 구조에서 과연 제대로 된 '고등'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일까. 학생들은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고, 교수는 충실한 연구를 할 수 있을까.

어쨌든 정부는 등록금 규제로 야기된 대학의 재정난을 국가재정으로 메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대학평가도 강화돼 갔다. 이명박 정부부터 시작된 재정지원제한대학, 학자금대출제한대학은 한때 일 년에 50개가 넘는 대학을 선정한 때도 있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아예 대학평가와 재정지원, 정원감축을 연계했다. 물론 국가재정이 허투루 쓰이면 당연히 안 된다. 문제는 타당성이다. 이 중엔 이름만 대면 아는 대학들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 획일적 평가 기준으로 멀쩡한 대학이 부실대학 오명을 썼다. 안 그래도 힘든 대학의 어려움은 커져갔다.


대학에 대한 교육부 규제는 조변석개로 변했다. 교양교육을 강화하라더니 산학교육을 강화하라 했다. 전면적 구조조정, 파괴적 혁신도 하라고 했다. 교직원 인사, 교수연구년, 교육혁신조직, 지역사회 봉사같이 대학이 알아서 하면 될 온갖 것들이 인증평가에 들어갔다. 재정지원사업도 많아져 가더니 급기야는 연(年) 200억원짜리 글로컬 사업도 생겼다. 보통 사람의 눈으로도 황당하거나, 실현 가능성이 의심되는 황당한 자기 파괴적 계획서가 혁신이란 이름으로 제출됐다. 3년 차에 접어든 글로컬 사업 상당수가 실행 과정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


그 사이 대학은 어떻게 되었을까. 안 그래도 똑같던 대학이 이런저런 평가 기준에 줄서기 시작하며 전부 비슷해져 갔다. 인공지능(AI)이 뜨면 갑자기 모든 대학이 AI를 내세우고, 교양교육을 내세우면 모든 대학이 교양을 강화한다. 산학협력도 강조한다. 재정난에 처한 대학은 이들 모든 사업을 수주하느라 규정을 바꾸고 조직을 만든다. 연구하고 교육해야 할 대학이 이런 일로 진을 뺀 지 오래됐다. 자칭 전문가들은 이것을 또 혁신이라 포장해 왔다.

그래서 교육부에 말한다. 지금이라도 대학을 살리려면 등록금 규제, 장학금 규제 개선에 나서라고. 일반재정지원 확대와 대학 자율성을 제한해 온 특수목적 사업을 과감히 줄이라고. 그 외 정책들은 너무 하고 싶어 손이 근질거려도 일단 쉬어 보자고. 사실 교육부는 대학에 정원을 줄이라고도 무전공을 하라고도 산학협력을 하라고도 지역대학끼리 협력하라고도 할 필요가 없다. 대학이 알아서 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잊지 말자. 지난 세월, 교육부의 대학개혁 조급증이 오히려 대학 경쟁력을 망쳐왔다는 것을.


이혁우 배재대 교수(좋은규제시민포럼 규제 모니터링 위원장)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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