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처럼 쌓아둔다…최대 5000억어치 비축고에 '시럽' 저장하는 캐나다[맛있는 이야기]

전 세계 유일한 캐나다 메이플 시럽 비축고
과잉 생산분 비축해 가격 안정화
21만 배럴 넘게 저장…강도단 표적 되기도

편집자주최초의 과자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발견됐다고 합니다. 과자는 인간 역사의 매 순간을 함께 해 온 셈이지요. 비스킷, 초콜릿, 아이스크림까지. 우리가 사랑하는 과자들에 얽힌 맛있는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미국이 위기상황이나 공급난에 대비해 정부 차원에서 석유를 미리 저장하는 전략 비축유처럼, 캐나다에도 정부가 책임지고 비축하는 전략 물자가 있다. 바로 국민 식자재인 '메이플 시럽'이다.

캐나다에만 있는 메이플 시럽 비축고

메이플 시럽은 황갈색의 달콤한 시럽으로, 주로 팬케이크나 감자튀김에 뿌려 먹는다. 정제 설탕보다 무기질 영양소가 풍부하고, 항산화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설탕 대체재로 쓰이기도 한다. 한때는 북미·유럽에서 주로 소비됐으나 지금은 국내에서도 친숙한 식자재다.


퀘백 메이플 시럽 생산자 연합(FPAQ)이 보유한 퀘백주 시럽 저장고 내부 모습. FPAQ 홈페이지

퀘백 메이플 시럽 생산자 연합(FPAQ)이 보유한 퀘백주 시럽 저장고 내부 모습. FPAQ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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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플 시럽은 북미 여러 지역에서 생산되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캐나다가 1등이다. 캐나다 퀘백주는 글로벌 메이플 시럽 생산량의 75%(캐나다 농식품부 통계·2020년)를 차지하며, 메이플 시럽은 캐나다의 대표 수출품이자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다.

캐나다에서 메이플 시럽의 위상은 단순한 식료품을 넘어선다. 메이플 시럽 생산 기업들의 자발적 협력체인 '퀘백 메이플 시럽 생산자 연합'(FPAQ)은 메이플 시럽을 전략 물자로 지정, 전 세계 유일한 메이플 시럽 전략 비축고를 운용한다. 전략 비축고의 역할은 매년 생산되는 시럽의 배럴당 가격을 적정 수준으로 통제하는 것. 이를 통해 캐나다 메이플 시럽 생산량을 안정화하고, 기업의 이익도 도모하는 것이다.

퀘백주에 21만배럴 저장…"캐나다의 OPEC"

메이플 시럽은 설탕단풍나무의 수액을 끓여 제조한다. 캐나다 국기에도 붉은색의 설탕단풍나뭇잎 모양이 있다. 설탕단풍나무는 특히 캐나다 퀘백주 지역에 울창한 숲을 형성했는데, 이 때문에 퀘백주 인근을 '메이플 벨트'라고 칭한다.


FPAQ의 메이플 시럽 전략 비축고도 퀘백주 교외 지역에 분포해 있다. FPAQ 공식 홈페이지를 보면, 현재 퀘백주에 설치된 전략 비축 탱크는 총 21만8000배럴(4억달러·한화 약 5076억원)의 시럽을 비축할 수 있다. 캐나다 정부 집계에 따르면 캐나다 메이플 시럽 총생산량은 지난해 기준 8억3700만달러(약 1조1941억원)에 달했다. 전체 생산량의 절반가량을 저장할 수 있는 셈이다. 이를 두고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메이플 시럽 전략 비축고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메이플 시럽. 픽사베이

메이플 시럽.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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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치 탓에 시럽 전략 비축고는 한때 도둑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2011년 생 루이 드 블랑포드 비축고에는 강도단이 잠입, 시럽 통에 든 내용물을 다른 통으로 옮긴 뒤 트럭에 실어 빼돌렸는데, 이들은 수개월에 걸쳐 무려 9571배럴에 해당하는 시럽을 훔쳐 인근 시장에 팔았다. 이후 캐나다 경찰은 수개월의 수사 끝에 2012년 12월 강도단 17명을 체포했다. 이 사건은 '캐나다 메이플 시럽 대강도 사건'이라 불리며 현지 언론에 대서특필됐고, 2021년에는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졌다.

코로나19 위기 때도 전략 비축고 활약

메이플 시럽 전략 비축고는 2000년 설립됐다. 메이플 시럽 생산의 불확정성을 막기 위한 대책이었다. 시럽의 원료인 수액은 단풍 나무 줄기에 상처를 낸 뒤 채취하는데, 생산량이 전적으로 그 해 날씨에 달려 있다. 이 때문에 캐나다의 연간 메이플 시럽 생산량은 언제나 불규칙했다. 그러나 전략 비축고 덕분에 캐나다는 수액 추출량이 부족한 해엔 비축분을 방출하고, 과잉 생산된 해엔 수출하고 남은 시럽을 저장할 수 있게 됐다.


메이플 시럽은 북미 대륙에서 자라는 설탕단풍나무 수액을 채취해 졸여 제조한다. 픽사베이

메이플 시럽은 북미 대륙에서 자라는 설탕단풍나무 수액을 채취해 졸여 제조한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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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비축고는 2021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전 세계적인 이상 기후, 사회적 거리두기 제약으로 인한 채취 및 생산 활동 제한으로 퀘백주의 메이플 시럽 생산량이 바닥을 친 해였다. 당시 FPAQ는 전략 비축고의 시럽을 방출해 원활한 시럽 공급을 보장했다. 캐나다 코넬대 메이플 시럽 연구소에 몸담았던 마이클 팰런 전 소장은 C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비축고가 없었다면 가게 선반에 시럽이 덜 올라갔을 테고, 가격도 폭등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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