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이래 발전을 거듭해 온 기계 문명은 21세기에 이르러 인공지능(AI)의 약진으로 인간 고유의 지능에 도전하고 있다. 이에 비해 고(故) 피터 브룩(Peter Brook)이 '빈 곳에 한 명의 배우가 지나가기만 해도 창출된다'고 말했던 그 연극은, 과연 시대에 뒤처진 예술일까? 물질만능과 인공지능의 시대에, 연극의 쓸모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전국적으로 연극 관련 학과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10개 미만의 대학에서 출발한 학과가 전문대학까지 포함해 60여개로 확대된 것이다. 인문학의 위기가 고조되던 그 시기, 각 대학은 당시 조짐을 보이던 K컬처의 가능성과 연예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품은 젊은이들에게 문호를 활짝 열었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연극에 젊음을 바친 이들은 무대보다 대학 강단에서 더 오래 머물게 됐고, 연기자나 가수를 꿈꾸던 학생들은 대학에서 연극을 통해 기초를 닦거나 학교를 발판으로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나자 대학들은 각종 지표와 성과를 이유로 연극 관련 학과의 축소를 논하기 시작했다. 그 지표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안타깝게도 '졸업생 취업률'이었다. 수많은 졸업생 중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처음의 소망대로 연예계나 연극 현장에 안착해 안정된 생계를 이어가는 경우가 지금도 여전히 드물다.
문화 선진국에서는 연극과 같은 순수 공연예술을 '공공재'로 본다. 맑은 물이나 공기가 건강한 사회에 필수적이듯, 양질의 공연문화 역시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로 여겨지는 것이다. 프랑스의 세계적 공연단체 루아얄 드 뤽스(Royal de Luxe)는 이러한 가치를 실천하며 지자체의 지원 아래 시민들이 무료로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해왔다. 그들이 상주하는 낭트(Nantes)에서는 전설적인 공연 '거인들(Les Geants)'을 10여년간 정기적으로 선보였고, 그 결과 지역 청소년 범죄율이 크게 낮아졌다고 한다.
이처럼 K컬처의 화려한 영역에서 다소 소외된 듯 보이는 우리 연극 또한 사회와 문화의 근간을 맑게 채우는 저수지 역할을 해야 한다. 고대부터 이어져 온 인간의 지혜, 현실적 통찰, 그리고 초탈의 유머로 가득한 연극이 동시대의 일상을 촉촉이 적시며 대중문화를 떠받치는 든든한 뿌리가 돼야 한다. 여기에 바로 연극의 쓸모가 있지 않겠는가.
튼실한 연극을 위해서는 지속 가능한 창작 생태계 조성과 연극인의 복지 향상이 절실하다. 최근 연극계에서는 '연극진흥법' 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공공지원금이 확대된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여러 함정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지원금이 공적 자금이라는 이유로 객석 규모나 관객 수 등 가시적인 성과 지표에 의존하고, 각종 지방자치단체 문화재단은 예술가를 지원하기보다 오히려 자신들이 기획자가 돼 주제나 형식, 정산 방식으로 예술가들을 압박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중의 인기에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예술세계를 구축하는 연극이 되기를 바란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 연극이 사회 속에서 공공재로 굳건히 자리할 때 K컬처는 우연한 성과에 그치지 않고, 세계 문화계를 오래도록 선도할 것이다.
이화원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회장, 상명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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