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의 위기…떠오르는 극우 '르펜'

르코르뉘 총리 27일 만에 사임
2년 새 여섯번째 총리 임명
마크롱 연금 개혁 중단 관측도

'48시간 내 새 총리 임명' 소동은 프랑스가 처한 정치 체제의 구조적 위기와 에마뉘엘 마크롱 체제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잇따른 총리 사임과 긴축 예산안 협의가 난항을 겪으면서 극우 정당이 그 틈새를 파고들며 급부상하는 모습이다. 마크롱 대통령이 추진해 온 연금 개혁마저 중단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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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제궁은 지난 8일(현지시간) 마크롱 대통령이 48시간 이내에 신임 총리를 임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전 총리가 취임 27일 만에 사임했기 때문이다. 그는 2022년 출범한 마크롱 2기의 행정부의 다섯 번째 총리로, 그의 사임으로 마크롱 2기 행정부는 불과 2년도 채 안 돼 여섯번째 총리를 맞이하게 됐다. 앞서 전임인 프랑수아 바이루 전 총리는 9월 의회 불신임 투표 패배로 실각한 바 있다.

이러한 프랑스의 정치적 분열은 의회 구성에서 비롯됐다. 마크롱 대통령은 2024년 6월 국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했지만 좌파 연합·극우 국민연합(RN)·대통령이 이끄는 중도 우파 연합이 비슷한 의석을 차지하며 어느 쪽도 과반을 확보하지 못했다. 그 결과 프랑스 의회는 사실상 통치 불능 상태(hung parliament)에 빠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르코르뉘 전 총리의 사임으로 야권에선 조기 총선 실시와 마크롱 대통령의 사임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RN의 마린 르펜 대표는 "마크롱이 임명하는 어떤 총리도 반대하겠다. 총선을 다시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극좌 정당인 굴복하지않는 정당(LFI) 프랑스의 마틸드 파노 원내대표는 "유일한 해결책은 마크롱 대통령이 사임하고 떠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가디언은 "르코르뉘의 (사임) 결정으로 마크롱 대통령에게 남은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며 "조기 총선을 실시하거나, 대통령직을 사임하거나, 혹은 새 총리는 찾는 것뿐이었다"라고 전했다.


세 가지 선택지 중 마크롱 대통령이 고른 건 새 총리 지명이었다. 의회 해산, 대통령직 사퇴, 조기 총선 등 야권의 요구를 묵살하고 정권 유지를 선택한 것이다. 조기 총선이 곧 극우 세력의 집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최근 여론조사에서 RN은 약 35%의 지지율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마크롱 대통령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RN의 정치적 위상이 강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잇따른 내각 붕괴와 총리교체로 정치적 혼돈에 빠진 프랑스의 유일한 수혜자는 르펜과 국민연합이라고 분석했다. 로이터 역시 "RN은 중도 정치의 붕괴와 기성 정치에 대한 불만 여론을 흡수하며, 의회 해산으로 마침내 집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주도해온 연금 개혁마저 중단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단계적으로 연장하는 이 법안은 오랜 논쟁 끝에 2023년에 통과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좌파 성향 정당들은 자신들의 지지를 얻는 대가로, 마크롱 대통령에게 대표적인 성과로 꼽히는 연금 개혁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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