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국가보다 큰 초거대기업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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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도회사는 흔히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기업으로 꼽힌다. 영국의 동인도회사는 거의 100년 동안 인도 대륙 대부분을 사실상 통치했다. 병력만 약 30만명에 달해 영국 본토 군대보다 많았으며 기업이지만 행정권은 물론 입법, 사법권까지 행사하는 사실상의 국가였다.

그러나 최전성기였던 18세기 중엽에도 영국 동인도회사의 시가총액은 3000만파운드에서 4000만파운드 정도로 당시 세계 경제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0.4%에 불과했다. 영국보다 앞서 인도와의 교역을 지배했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도 전성기였던 17세기 중엽 시가총액은 약 8000만길더로 당시 세계 전체 GDP의 0.1%를 넘지 못했다.


엔비디아의 주식 시장 시가총액이 4조달러를 넘었다고 한다. 현재 세계 전체 GDP는 약 100조달러다. 단순하게 비교할 수는 없지만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은 일본의 GDP보다도 많다. 지금 우리는 그야말로 거대 기업의 황금기에 진입하고 있다. 경제력 집중 현상은 역사상 전례가 없고 규모는 세계적이다.

GDP가 1조달러를 넘는 나라도 20개를 넘지 못하는데 세계 전체 GDP의 1%를 넘는 시가총액 1조달러 이상의 기업이 무려 11개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명목 GDP 1조7000억달러보다 시가총액이 더 많은 기업은 엔비디아와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과 알파벳, 아마존과 메타까지 6개다. 모두가 미국에 본사를 둔 대형 IT 기업들이다. 인류 역사상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빠르고 강한 기술 혁신의 결과다.

경제력 초집중 시대 출현의 배경에는 동시에 진행된 세계화와 정보화가 있다. 동인도회사는 세계화 이전의 기업이었지만 지금의 거대 기업들은 전 세계가 무대다. 전통적인 기업과 다른 기술 기업만이 가진 핵심 자산은 막대한 사용자 기반의 데이터고, 그 지배력 강화는 네트워크 효과(Network Effect)에서 비롯된다.

애플은 스마트폰 생태계, 아마존은 전자상거래 및 클라우드(AWS), 구글은 검색시장, MS는 소프트웨어와 클라우드(Azure)를 통해 거대한 사용자 기반 플랫폼을 완성했다. 경쟁 기업은 규모의 경제와 기술력 격차로 인해 시장 진입 자체부터 어렵다. 코로나 이후의 세계적 유동성 증가와 최근 인공지능(AI)의 폭발적인 발전은 이들 기업의 가치를 천문학적으로 끌어올린 결정적인 요인이다. 시가총액 1위 엔비디아는 AI 반도체 최강자고 시가총액 2위 MS는 챗GPT 최대 수혜주다, 이들 기업의 시가총액 집중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AI 기술은 규모의 경제가 만드는 효과가 가장 두드러져 데이터와 컴퓨팅 자원이 많은 기업이 더 나은 AI를 만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나 위험한 일이다. 이들 대형 기술 기업에 문제가 생기면 전체 시장이 함께 붕괴할 수 있다. 물론 대형 IT 기업의 독과점적 규모는 필연적으로 각국 정부나 규제 당국과의 마찰을 낳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도 이들을 무조건 규제하기보다는 통제하고 협력하는 관계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어느덧 이들은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 되었고 국가 운영도 이들의 도움이 없으면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혁신의 이익이 일부에게만 집중되는 현상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다. 적절한 규율이 없으면 민주주의의 근간인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과 공정한 경쟁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들 기업이 제공하는 클라우드, AI와 플랫폼 서비스는 이제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공공재다. 거대 기업들의 영향력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기술적 혜택과 그들이 행사하는 비대칭적 권력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안고 있다.


김상철 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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