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은 인체 면역계의 브레이크 역할을 규명한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 노벨위원회는 6일(현지시간) '말초 면역 관용(peripheral immune tolerance)'의 원리를 밝힌 공로로 미국의 메리 브런코, 프레드 람스델, 일본의 사카구치 시몬 3인을 공동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위원회는 "이들의 발견은 인체가 스스로의 조직을 공격하지 않도록 유지하는 핵심 기전을 규명했다"면서 "면역학의 근본 원리를 재정립한 업적"이라고 평가했다.
일본의 사카구치 시몬 오사카대 석좌교수는 1990년대 초반 면역계 안에서 자가면역 반응을 억제하는 조절 T세포(Regulatory T cells·Treg) 의 존재를 처음으로 제시했다. 그는 실험을 통해 특정 T세포가 과도한 면역 반응을 제어하며 면역 균형을 유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후 미국의 두 연구자가 그 퍼즐을 완성했다. 메리 브런코 박사는 생화학자 출신으로 당시 미국 워싱턴대학교와 생명공학기업 아이모뮤노에서 유전자 수준의 면역질환 연구를 이끌었다. 그녀는 2001년 생쥐 모델에서 자가면역 질환을 유발하는 '포크헤드박스 P3(Foxp3)' 유전자 돌연변이(scurfy mutation)를 규명했다. Foxp3는 조절 T세포의 형성과 기능을 결정하는 핵심 전사인자(transcription factor)로, 면역 관용(immune tolerance)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재는 미국 시애틀의 바이오테크 기업인 인사이트의 연구본부에서 면역 관련 유전자 기반 신약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함께 수상한 프레드 람스델 박사는 면역학자이자 생명공학 혁신가로, 당시 아이모뮤노에서 브런코와 공동으로 Foxp3의 면역조절 기능을 규명한 인물이다. 그는 Foxp3의 결함은 자가면역질환을 유발하는 IPEX 증후군(Immune dysregulation, Polyendocrinopathy, Enteropathy, X-linked syndrome)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밝혀내며, Foxp3가 조절 T세포의 '마스터 유전자(master regulator)'임을 제시했다. 현재 람스델은 미국 샌프란시스코 기반의 사이톨릭 테라퓨틱스와 협력하며 자가면역 억제 신약 및 면역 균형 복원 플랫폼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세 사람의 연구는 1990년대 초부터 각각의 흐름으로 발전해 왔으나, 2001년 브런코·람스델이 Foxp3 유전자의 분자적 실체를 규명하고 사카구치가 이를 조절 T세포와 연결시키면서 하나의 완전한 면역관용 이론으로 정립됐다.
올레 캄페 위원장은 "이들의 발견은 면역 체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왜 우리 모두가 심각한 자가면역질환을 겪지 않는지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국내 면역학계도 이번 노벨위원회의 선정을 반겼다. 종양·근육·면역의 미세환경을 평생 연구하며 대사 조절이 관용·면역활성의 스위치가 될 수 있음을 밝혀왔던 김성수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는 이들의 연구결과에 대해 "기초과학의 정수를 보여준 연구"라면서 "수십 년 전부터 인류의 면역 이해를 완전히 바꿔놓은 연구가 드디어 정당한 평가를 받았다"고 반겼다.
김 교수는 "최근에는 위고비 같은 비만 치료제나 당뇨 신약처럼 응용의학 쪽 연구가 주목받아 왔는데, 노벨위원회가 다시 기초로 돌아간 것은 놀라우면서도 환영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조절 T세포와 Foxp3의 관계는 단순한 세포 생물학이 아니라, '몸이 스스로를 공격하지 않게 하는' 인체의 철학적 시스템을 보여준다"면서 "면역학이란 학문의 본질을 다시 상기시킨 결정"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번 수상이 "응용보다 근본을 선택한 노벨위원회의 철학적 판단"으로 보고 있다. 자가면역 억제와 면역 균형이라는 개념은 최근까지도 암 면역치료나 백신 개발 등 다양한 분야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특히 Foxp3 유전자의 조절 네트워크는 차세대 면역조절제, 세포치료제, 장기이식 면역억제 최소화 전략 등으로 이어지고 있어, 향후 임상 응용이 활발히 확대될 전망이다.
김 교수는 "이번 수상은 인류가 면역을 단순한 '공격'의 시스템이 아닌 '균형'의 시스템으로 재인식하게 된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면역학은 그간 질병과 싸우는 공격적 면역 반응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이제는 스스로의 세포를 지키는 '억제의 과학'이 주목받는 흐름으로 바뀌고 있다. 김 교수는 "브런코·람스델·사카구치 세 과학자의 연구가 이 전환의 출발점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수상자들은 상금 1100만 스웨덴 트로나(약 16억4000만원)를 똑같이 나눠서 받게 된다. 노벨위원회는 이날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7일 물리학상, 8일 화학상, 9일 문학상, 10일 평화상, 13일 경제학상 등의 수상자를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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