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8500만 성공회 신도의 영적 지도자인 캔터베리 대주교 자리에 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올랐다. 영국 성공회(국교회) 설립 490년 만의 일이다.
연합뉴스는 4일 AFP 등 외신을 인용,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3일(현지시간) 아동 성 학대 은폐 의혹으로 사임한 저스틴 웰비 전 대주교의 뒤를 이어 사라 멀랠리(63) 런던 주교를 제106대 캔터베리 대주교로 지명했다고 보도했다.
캔터베리 대주교는 영국 성공회의 실질적 수장이자, 전 세계 34개 자치 관구로 구성된 세계 성공회의 영적 지도자로 상징적 의미가 크다. 여성이 영국 국교회를 이끄는 것은 1534년 헨리 8세가 로마 가톨릭과 결별하며 국교회를 세운 이후 처음이다.
간호사 출신인 멀랠리는 2002년 사제로 서품된 뒤 2018년 여성 최초의 런던 주교로 임명됐다. 런던 주교는 영국 성공회 내 서열 5위의 고위직으로, 당시에도 교회 내의 이른바 '유리천장'을 깼다는 평가를 받았다. 멀랠리는 잉글랜드 지역 최고간호책임자(CNO)로 근무한 뒤 사목의 길로 들어섰으며, 동성 커플 축복을 지지하는 등 진보적 입장을 보여왔다.
그는 지명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생존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연약한 이들을 돌보며, 모두가 안전하고 존중받는 교회를 만드는 것이 나의 소명"이라고 밝혔다. 외신들은 "그가 전임자들처럼 교회 내 보수·진보 진영 간 간극을 메우는 과제를 안게 됐다"고 전했다.
국내에서도 환영의 목소리가 나왔다. 대한성공회는 이날 발표한 논평에서 "성공회 1500년 역사상 최초로 여성이 캔터베리 대주교직에 오르는 획기적인 사건"이라며 "성공회 공동체의 새로운 여성 리더십이 가져올 변화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또한 "이번 역사적 선출이 전 세계 여성 평등과 리더십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큰 격려가 될 것"이라며 "멀랠리 대주교의 리더십을 위해 기도한다"고 덧붙였다.
대한성공회는 1993년 독립 관구로 승격해 자치권을 행사하고 있으며, 캔터베리 대주교와 '동등자 중의 제일자(Primus inter pares)' 관계로 교제와 일치를 유지하고 있다.
한편 멀랠리는 내년 1월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착좌식을 거행하며 공식적으로 대주교 직무를 시작하게 된다. 이후 영국 왕실이 참석하는 즉위식이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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