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총리다. 국가안보와 재무 일부를 제외하면 국내 정책 중 그가 관여하지 않는 영역은 없다."
트럼프 1기 당시 수석 전략가이자 2기에서도 보수 여론을 주도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떨치는 스티브 배넌은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40)을 두고 이같이 평가했다. 공식적으로 총리가 없는 미국에서 국정운영 전반에 관여하는 '사실상의 총리'나 다름 없다는 의미다.
4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밀러 부비서실장은 오늘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에서 비(非)선출직 중 가장 강력한 관료로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의 부비서실장 겸 국토안보 고문을 맡고 있으며 사실상 '미국 재편 계획의 설계자'로 알려져 있다.
반(反)이민정책이 대표적이다. 밀러 부비서실장은 반이민정책의 이론적 토대를 쌓고 다양한 방법론을 제시하며 정책을 이끌고 있다. 트럼프 1기 백악관에서 이민정책을 맡았으며 2기 때 권한은 누구보다 막강해졌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도 백악관 선임보좌관 겸 연설담당관으로서 여러 이슬람 국가 국민의 미국 입국을 금지했다. 2018년에는 불법 이민자에 대한 '무관용' 정책을 시행한 바 있다. 다만 1기 때는 존 케리 국토안보부 장관 등 '방안의 어른들'이 제지에 나서면서 폭주를 막았다. 지금은 이마저도 부재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이민세관단속국(ICE)에 하루 3000명의 체포를 지시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밀러는 지난 5월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부 장관과 함께 워싱턴에서 이민 단속 고위 관계자들을 불러모아 실적을 다그쳤다. 이 자리에서 그는 하루 3000명 체포 할당량을 정했다. 이는 2기 초반 할당량의 약 4배에 이른다.
정부 내 존재감도 상당하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밀러 부비서실장은 백악관 루스벨트룸의 회의 테이블 맨 상석에 앉는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D.C. 등 수도 경찰 장악 문제에도 깊이 관여한다고 WP는 전했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성명에서 밀러를 "10년 가까이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신뢰한 고문"이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그의 지도력에 절대적 신뢰를 보낸다"고도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젊은 보수 활동가 찰리 커크의 사망을 계기로 열린 추모식에서 밀러 부비서실장의 추도사는 그의 좌파 집단을 향한 반감을 그대로 드러냈다. 커크의 사망은 흩어진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세력을 결집할 구심점이 될 것으로 관측됐다.
커크는 지난달 10일 유타주 한 대학 캠퍼스에서 열린 보수단체 '터닝포인트USA'의 대면 토론 행사 도중 총에 맞아 숨졌다. 22살 타일러 제임스 로빈슨이 범인으로 체포됐다.
밀러 부비서실장은 추모식에서 "여러분은 지금 어떤 용을 깨웠는지 알지 못한다"며 "우리는 이 문명을, 서구를, 공화국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결연한지 알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디애틀랜틱은 "트럼프 대통령의 진영은 절대선(善), 반대 세력은 절대악(惡)으로 표현했다. 특히 전자는 후자를 완전히 파괴할 운명을 지녔다는 것이 골자였다"고 비평했다.
특히 밀러 부비서실장의 지니는 말의 무게와 힘을 고려했을 때 파급력이 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FT는 이를 두고 "다른 추도사들도 커크 암살에 트럼프 행정부의 정적들이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밀러의 발언은 특히 무게를 가졌다"며 "그는 보수 진영의 분노를 '정의로운 행동의 천둥'으로 바꾸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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