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명 삼성생명 법(보험업법 개정안)이 발의되고, 금융감독원장도 공개적으로 정상화하겠다고 밝히면서 삼성생명의 '일탈회계' 논란이 재점화하고 있다. 배당 전제 상품 가입자의 보험료로 산 삼성전자 지분가치가 85배가량 올랐음에도 차익을 분배하지 않고, 부채로 계상하지도 않은 채 수십년 동안 그룹 지배구조 안정화에 활용했다는 지적이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2일 서울 여의도 한경협회관에서 '삼성은 어떻게 좋은 회사로 거듭날 수 있을까-삼성생명 회계처리 등 거버넌스 현안 중심으로'의 세미나를 열고 관련 내용을 논의했다.
삼성생명의 일탈회계 논란은 1980년대 '유배당보험' 가입자들이 낸 보험료로 삼성전자 주식을 매입하면서 시작됐다. 유배당보험은 보험료를 투자해 거둔 수익 일부를 계약자에게 배당 형식으로 돌려주는 상품이다. 보험료가 상대적으로 높지만 배당금 지급을 통해 추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해외에는 여전히 유배당 상품이 주를 이루지만, 현재 국내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삼성생명은 당시 받은 보험료로 약 5401억원어치의 삼성전자 지분을 취득했다. 지분율로는 8.44%에 이른다. 전날 삼성전자 종가 기준 46조원에 육박하는 규모다. 지분가치가 85배나 올랐지만, 삼성생명은 그 차익을 유배당보험 가입자와 나누지 않았다. 아직 지분을 매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실현이익이고, 실현 후에 분배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또한 주식의 평가차익을 고객에게 돌려줄 '보험부채'가 아닌 '계약자지분조정'이라는 별도 계정으로 처리했다.
삼성생명 유배당보험 가입자들은 이 평가차익을 분배하라며 여러 차례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모두 삼성생명의 편을 들어줬다. 주식을 매각해 이익을 실현한 뒤에 분배하는 것이 맞다는 취지였다. 삼성생명은 경영진이 아직 매각할 시기가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이유로 배당을 미룰 수 있었다.
2023년 새 회계기준 'IFRS17'이 도입되면서 논란의 불씨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IFRS17은 향후 계약자에게 지급할 금액을 '시가'로 계산해 보험부채로 반영하도록 하고 있다. 삼성생명은 IFRS17 도입을 앞둔 2022년 말 금융감독원에 보험부채가 아닌 기존처럼 계약자 지분조정으로 둘 수 있는지 질의했다. 금감원이 이같은 예외를 인정해주면서 삼성생명의 '일탈 회계'가 시작됐다.
지난 2월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이 일명 삼성생명법을 발의하면서 다시 논란은 재점화됐다. 정권 교체 이후 이찬진 신임 금감원장도 일탈회계 문제를 국제회계기준(IFRS)에 맞춰 정상화할 것이라고 지난달 초 밝히면서 거들었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차 의원은 "삼성생명은 과거 유배당 보험계약자의 자금으로 급성장해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계열사가 됐지만, 삼성은 수년째 배당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차 의원이 발의한 삼성생명법은 보험사의 계열사 지분 가치를 취득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하고, 보유 한도도 총자산의 3%로 제한한다. 이 경우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은 40조원을 훌쩍 넘게 된다. 지난해 말 기준 삼성생명의 총자산은 275조원 규모다. 삼성전자 주식 상당 부분을 매각하고, 차익 일부도 유배당보험 가입자들에게 배당해야 한다.
한국회계기준원장인 이한상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삼성생명이 일탈회계를 고집하는 것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승계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일탈회계로 삼성전자 지분 매각을 막으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그룹 지배구조를 유지하려는 의도로 본 것이다.
이 교수는 "삼성생명이 '매각 계획이 없으니 현금 유출이 없다'며 보험 부채로 잡지 않는 것은 모순"이라며 "유배당보험 계약자의 권리를 고의로 무력화하는 행위라 신의성실 원칙 위반이자 집단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영국 자산운용사 헤르메스의 조나단 파인스 수석 매니저는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원가로 재무제표에 반영하는 것은 무작위로 임의의 숫자를 넣는 것과 다름없다"며 "시가 기준 삼성전자 주식 비중이 삼성생명 전체 자산에서 과다한 점도 문제고, 삼성그룹 지배 수단의 일부인 계열사로 남아있으면서 이론적으로 가장 유리한 시점에 삼성전자 지분을 매도할 수 없도록 묶인다는 점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삼성생명 측의 추천으로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신병오 안진회계법인 전무는 사실관계에 오해가 있다고 반박했다. 신 전무는 "1980년대 팔린 유배당보험 상품 금리는 7%고, 복리 효과와 추가 가입자 보험료까지 고려하면 적립액은 50조원 수준"이라며 "현금흐름이 창출되지 못하고 오히려 손해를 보고 있는 상품이며, 가입자들의 절반이 50대 이하로 배당을 실시하면 꾸준히 부담된다"고 주장했다.
배당을 위해 자산을 처분하면 삼성생명의 건전성과 사업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신 전무는 "삼성생명 등 한국의 보험사들은 감독당국과 소통 및 질의를 통해 일탈회계를 적용했고, 글로벌 회계법인들도 한국 보험사의 일탈회계 적용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라며 "특정 회사의 경제적 실질은 외부인 관점에서 가장 잘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감사인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이 교수는 "삼성생명이 확보한 삼성전자 지분은 명백히 1980년대 유배당보험 가입자 보험료만으로 산 5401억원어치"라며 "당장 최근 영국 런던에 모인 세계 회계 전문가들도 모두 삼성생명의 일탈 회계를 비정상이라고 봤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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