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권(반도체 산업단지 인접지역)'으로 통하는 경기 평택과 이천의 미분양 물량이 다시금 증가세로 돌아섰다. '반도체 클러스터',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역세권' 등 각종 개발 호재가 무색할 지경이다.
8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경기도 전체 미분양 주택은 1만1857가구로 전월 대비 1344가구 늘었다. 이 가운데 평택시(4197가구)와 이천시(1667가구)는 도내 미분양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월간 증가 폭 역시 전국 최상위권에 올랐다. 평택은 한 달 새 715가구, 이천은 477가구 늘었다.
월별 추이를 보면 두 지역 모두 1월 최고점 이후 점진적 해소 흐름을 보이다 8월에 다시 반등한 모습이다. 평택은 올해 1월 6438가구에 달하던 미분양이 7월에는 3482가구까지 줄었지만, 8월 들어 반등했다. 이천도 같은 기간 1873가구에서 1190가구로 감소하다 8월에 증가세로 전환됐다.
미분양 물량 대부분은 전용 60~85㎡ 중형 면적대에 몰려 있다. 평택의 경우 전체 미분양의 약 80%인 3336가구가 중형 평형으로, 실수요층이 선호하는 면적임에도 분양이 부진한 상황이다. 이천도 97%가 국민평형(전용 84㎡ 이하)에 집중돼 있다.
평택은 삼성전자 반도체 평택 캠퍼스, 이천은 SK하이닉스 본사가 위치한 대표적인 '반도체 산업 중심지'다. 이 같은 입지 호재를 등에 업고 대규모 분양이 추진됐지만, 실질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서 시장은 과잉 공급 상태로 접어들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9월 5주차 기준 평택 아파트값은 올해 누계로 -6.18%, 이천은 -3.49%를 기록했다. 평택은 부동산원의 집계 대상인 전국 178개 시군구 중에서도 꼴찌이며, 이천 역시 최하위권이다. 청약 시장도 직격탄을 맞았다. 이천의 최근 분양인 부발역 에피트 에디션은 지난 6월 692가구 모집에 123가구 접수(경쟁률 0.17대1)에 그쳤다. 비슷한 시기 평택에서는 브레인시티 메디스파크 로제비앙 모아엘가가 1200가구 공급에 단 38개 통장만 접수됐다. 사실상 청약이 '실종'된 셈이다.
문제는 공급 폭탄이 당분간 이어질 예정이라는 점이다. 평택은 2027년까지 총 2만7000가구, 이천은 내년 한 해만 5065가구가 입주를 앞두고 있다. 이는 각 지역의 적정 수요(3년간 9000가구, 연간 1000가구)를 3~5배 이상 초과하는 물량이다.
과거에는 '반세권' 기대감에 분양권 프리미엄 거래가 활발했던 지역이지만, 최근 들어 수천만 원대 마이너스 프리미엄(마피) 매물이 속출하고 있다. 평택은 GTX-A·C노선 연장, 지제역 복합환승센터 개발, 삼성 반도체 캠퍼스 증설 등 굵직한 호재에도 불구하고, 실제 수요가 받쳐주지 않으며 가격 하락과 미분양이 겹친 이중고를 겪고 있다.
또한 이들 지역은 수도권이기에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미분양 대책의 '사각지대'에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준공 후 미분양 매입,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미분양안심환매사업, 기업구조조정(CR) 리츠 모두 지방만을 대상으로 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반도체 산업이 예전만 못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호재 효과가 퇴색했고, 공급과 수요 간 괴리가 커지고 있다"며 "결국 실거주 전환 수요가 본격화되기 전까지는 침체 기조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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