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김파일 켜고 .hwp로 바꿔라"…공무원 'G드라이브 살리기' 매뉴얼까지[관가in]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시스템 마비
공문은 수기로 작성해 팩스로 전달
“행정 90년대 회귀” 자조
"대체휴무 줄 테니 중대본 파견" 공지도

주민센터에 붙은 일부 사무 중단 안내문 연합뉴스

주민센터에 붙은 일부 사무 중단 안내문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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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정부 전산시스템이 장기간 마비되면서 공무원들의 업무 공백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공문 발송·결재가 불가능해지자 각 부처는 팩스·전화 같은 구시대 방식에 의존해 임시로 업무를 이어가고 있다. 부처 업무용 자료 저장소인 'G드라이브' 전소로 입법예고 자료까지 증발해 시행규칙을 다시 작성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관가에 따르면 이주 전산시스템이 마비되자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업무를 위한 각종 '생존법'까지 등장했다. 실제 일부에서는 개인 PC 임시폴더에 남아 있는 문서를 찾아 복구하는 이른바 'G드라이브 파일 살리기 매뉴얼'이 공유됐다. 방법은 윈도우 탐색기에서 숨겨진 파일 표시를 켜고, 캐시 폴더에 있는 파일을 복사해 확장자를 '.hwp'나 '.xlsx'로 바꿔 여는 식이다. 한 사무관은 "내 컴퓨터에만 파일이 수천개가 있었다"며 "엄청난 단순노동이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 시도했다"고 토로했다.

현장에서는 각종 불편이 잇따르고 있다. 한 부처 관계자는 "내부 문서는 유통이 되는데 타 기관과 공문 수·발신이 안 된다"며 "결국 수기로 결재를 받아 문서를 보내는 중"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공문을 작성해 기안자, 검토자, 전결자까지 사인을 다 받았는데, 수신처에 팩스로 보내려니 팩스번호조차 알 수 없는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공무원은 "내부 포털이 완전히 날아가 복구까지 몇 개월은 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마저 나온다"고 했다.


이처럼 전산망이 멈추면서 이미 진행 중이던 입법 절차도 중단됐다. 한 부처 사무관은 "입법예고 해둔 자료가 다 사라졌다. 시행규칙 작업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단순한 행정 불편을 넘어 정부 정책 집행 일정까지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이번 사태를 두고 "역사적 기록물 사태"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다. 단순한 전산망 장애를 넘어 공문 처리와 입법 절차, 내부 협업 체계 등 정부 행정의 근간이 흔들리는 초유의 사태라는 것이다.

이에 행정안전부는 각 부처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파견근무자를 모집해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파견 근무자에게는 이틀 대체휴무를 부여한다는 방침도 안내됐다. 그러나 전산망 복구 시점은 여전히 불투명해 혼란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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