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칸방에서 시작해 아파트로 이사 갈 만큼 장사가 잘되던 시절이 있었어요. 하루 100건 넘게 배달을 뛰며 잠잘 시간도 없었죠. 그런데 이제는 버티는 게 더 힘들어졌습니다. 온종일 일해도 최저임금도 못 버니, 더는 손에 기름 묻힐 이유가 없더라고요."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서 치킨 프랜차이즈를 20년 가까이 운영해온 김수진(가명·48)씨는 지난해 8월 결국 가게 문을 닫았다. 한때 연 매출이 10억원을 넘길 만큼 장사가 잘됐지만, 최근 몇 년 새 매출이 급격히 줄고 수익은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장사가 잘되던 시절 그의 매장 안은 늘 닭 튀기는 소리와 고소한 냄새로 가득했다. 동네 주민들은 "오늘도 냄새에 이끌려 왔다"며 웃기도 했다. 김씨에게 그 냄새는 자부심이자 삶의 이유였다.
김씨의 장사는 배달 플랫폼 등장 이후 무너졌다. 전화 주문은 사라지고 애플리케이션(앱) 주문이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장사 구조가 완전히 바뀌었다. 김씨는 "20년 동안 같은 동네에서 장사했는데, 목소리만 들어도 단골을 알 정도였다"며 "이젠 손님 얼굴은커녕 이름도 모르게 됐다"고 말했다.
배달 플랫폼을 이용하기 시작한 건 2018년이었다. 본사의 권유 때문이었다. 그는 닭을 튀기고, 남편은 오토바이를 몰았다. 부부가 함께 뛰던 시절엔 '손맛과 발품'으로 하루 100건 넘는 주문을 소화했다. 그러나 플랫폼에 입점한 이후 매출은 줄고, 수수료와 배달비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김씨는 "예전엔 배달 한 건이 전부 우리 몫이었다"면서 "앱 수수료, 광고비, 배달비까지 빼면 남는 게 없다. 하루 종일 튀기고 배달해도 통장에 남는 돈은 150만원 남짓"이라고 토로했다. 김씨의 말처럼 수익 구조는 악화일로였다. 하루 13시간씩 일하고도 손에 쥔 돈이 최저임금(시간당 1만30원·2025년 기준)에 못 미쳤다.
날씨가 나쁘면 손실은 더 커졌다. 비가 오면 배달비가 평소 4000원에서 7000원까지 치솟았다. 배달원이 잡히지 않아 배달이 지연되면 악성 리뷰가 쏟아졌고, 매장 평점이 떨어지면서 주문량이 줄었다. 김씨는 "비 오는 날은 정말 공포였다"며 "하루 매출이 반토막 나는 건 기본이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본사가 공급하는 닭, 박스, 소스, 치킨 무까지 모두 지정 납품가로 받았다. 팔리지 않아도 매달 전단지 물량은 정해진 대로 떠안아야 했다. 김씨는 "전단지를 고물상에 팔아봤자 몇 천원"이라면서 "본사에 내는 돈이 매출의 절반인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고 설명했다.
배달앱에서의 공동 할인 행사 역시 점주 몫이었다. 김씨는 "할인 이벤트 한다고 하면 건당 1500원씩 점주가 부담했다"면서 "하루 매출이 300만원, 400만원 나와도 끝나고 보면 손에 남는 건 50만원도 안 됐다"고 씁쓸히 웃었다.
폐업을 결심하기까지 1년 넘게 고민이 이어졌다. 본사는 '홀 전환'을 제안하며 인테리어 비용 7000만원, 대출 알선까지 내세웠지만 그는 거절했다. 적자 매장이 대출까지 떠안으면 그냥 빚쟁이 된다고 판단해서다.
결국 그는 10평 남짓한 가게를 정리했다. 김씨는 "마지막으로 간판을 떼던 날, 튀김 냄새가 밴 벽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울었다"며 "이 냄새가 내 인생이었는데, 이젠 다시 맡기도 싫다"고 털어놨다.
김 씨처럼 폐업을 선택하는 자영업자는 갈수록 늘고 있다.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전국 자영업 폐업자는 2022년 86만7292명에서 지난해 100만8282명 수준으로 증가했다. 이 중 소매업과 음식업의 비중은 각각 약 29.7%, 15.2%였다. 두 업종을 합하면 전체 폐업의 약 45%를 차지한다. 사업 부진을 이유로 폐업한 사업자는 50만6000여 명에 이른다.
폐업 직전 남편은 택배 일을 시작했고, 김 씨 자신도 퀵서비스를 병행했다. 그는 "하루라도 일정한 수입이 있어야 버틸 수 있다"면서 "장사를 해도 남는 게 없으니 차라리 일당이라도 확실히 받는 게 낫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서울 시내를 오토바이로 누비며 퀵서비스 일을 하고 있다. 손에 기름 대신 먼지가 묻고, 닭 대신 짐을 나른다. 김 씨는 "몸은 더 힘들지만 마음은 덜 아프다"며 "치킨집 할 땐 아무리 일해도 남는 게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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