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이중화) 모델에 투자해 추가 비용이 드는 것보다 모델이 확정된 뒤 투자하는 게 낫다고 결정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
대한민국 전산 마비를 일으킨 건 결국 정부의 안이한 판단이었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 발생 엿새째, 정부는 700여명을 동원해 시스템 복구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복구율은 10%대에 그치고 있다. 복구된 것으로 표시되는 시스템조차 '발급은 제한' 등 단서가 붙는다.
시스템 이중화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화재 후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클라우드·서버를 이중화한 재해복구(DR) 시스템은 재난 발생 시 '쌍둥이 기능'을 갖춘 외부 센터에서도 중단 없는 서비스를 가능케 한다. 2022년 데이터센터 화재에 의한 '카카오톡 먹통 사태' 당시 얻었던 교훈이다. 카카오는 이 사건 이후 데이터센터 이중화를 완료했다.
카카오톡 사태와 2023년 '정부 행정망 먹통' 사태로 이중화의 중요성이 부각된 지 3년이다. 정부 시스템은 교훈을 따르지 못했다. 지난해 정부는 '1·2등급 정보시스템 DR 시스템 구축 투자 금지' 지침을 내렸다. 연구용역·시범사업을 통해 '최적의 모델'을 찾은 뒤 전면 시행하겠다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대전·광주 국정자원 센터에는 DR 시스템이 '필요 최소한' 규모로만 존재한다.
비껴간 또 하나의 교훈이 있다. 카카오에 이어 지난해 발생했던 '아리셀 참사'는 리튬이온배터리 화재의 위험성을 알렸다. 내부 온도가 급격히 높아지는 열 폭주 현상이 일어나 화재에 취약하고, 배터리 화재 특성상 진화 작업도 까다롭다. 이 탓에 국정자원에서 발생한 화재도 완전 진압에 20시간이 넘게 소요됐다.
아리셀 공장 화재 이후 정부는 리튬 등 배터리 화재 예방을 위한 종합대책을 냈다. 다만 매년 화재안전 시행계획을 수립하고 안전조사를 진행하는 '화재안전 중점관리대상'은 아리셀과 같은 공장 위주로 지정됐다. 소방청 관계자는 "리튬배터리 취급·저장소도 포함되기는 했지만, 국정자원은 (중점관리대상에) 없다"고 설명했다. 국정자원 대전 센터 전산실은 '보안 시설'이라는 이유로 지난해 화재 안전점검을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재난·안전 분야에서 반복했던 말이 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대응하라"라는 것이다. 국정자원 화재는 여태껏 유지됐던 정부의 소극적인 대응 방식을 여실히 드러냈다. 민간에는 '정부 지침'을 내려 압박하면서도 정부는 신중만 기하는 태도다. 국정자원 화재의 교훈 아래에서는 정부도 '과하다 싶을 정도'의 각성을 통해 예방책을 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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