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대학의 당면 과제는 '마스터 러너' 인재 육성"[대학 대전환]⑮

마이클 크로 ASU 총장 인터뷰

AI, 더 많이·빠르게·깊이 배우게 해
대학서 한 과목만 전공, 무리한 상황
韓도 '배울 수 있는 길' 여러 개 제공해야

총장 취임 후 '포용적 대학'으로 전환
비대면 강의·온라인 학위 프로그램 집중
대면 학생 8만명·비대면 학생 11만명
학생 늘어나자 매년 9조원 운영자금 늘어

"애리조나주립대(ASU) 학생들은 전공 1~2개만 갖고 졸업하지 않는다. 5개 전공을 갖고 장학금까지 받는 학생도 있다. 인공지능(AI) 시대에 필요한 '마스터 러너(무엇이든 배울 수 있는 사람)'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마이클 크로(Michael Crow) ASU 총장은 지난달 29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아시아경제와 한 인터뷰에서 "AI는 사람들이 더 많이, 더 빠르고, 더 넓고 깊게 배우도록 만든다"면서 "그런데 대학에서는 왜 한 과목만 전공해야 하나"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대학은 학자끼리 경쟁하는 장이 아니라 사회적 성과를 향해 움직이는 대학이어야 한다"면서 "AI 시대의 산업 변화 속도에 맞춰 대학도 '교육·강의 혁신' '성과 혁신' '연구 혁신' 등 대학의 모든 영역에서 속도감 있는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이클 크로 애리조나주립대 총장이 서울 종로 포시즌스 호텔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마이클 크로 애리조나주립대 총장이 서울 종로 포시즌스 호텔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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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U는 2002년 크로 총장 취임 후 '뉴 아메리칸 유니버시티(New American University)' 모델을 내세워 전통 명문대와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아이비리그 식의 '소수 정예주의' 대신 많은 학생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포용적 대학'을 지향했다. SAT 등 점수만으로 학생을 선발하지 않고 잠재력과 도전정신 등을 평가해 뽑는다. 비대면 강의를 활성화하고 온라인 학위 프로그램도 만들어 반드시 대학 캠퍼스에 나와 학습해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버렸다. 지난해 오픈AI와 파트너십을 맺고 챗GPT를 대학 차원에서 활용, 맞춤형 AI 튜터를 만들었다. 챗GPT를 '올해 가장 활발한 교수'로 임명하기도 했다. 매번 관행을 뛰어넘는 혁신 덕분에 ASU는 세계적인 대학 평가기관인 'US 뉴스 & 월드 리포트(US News & World Report)'가 발표하는 세계대학평가에서 11년 연속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대학'으로 선정됐다.


이러한 혁신으로 매년 많은 학생이 ASU를 선택한다. 올 가을학기 ASU에 등록한 대면(풀 이머전) 학생은 160개국에서 온 8만명, 온라인 학위 과정(디지털 이머전) 학생은 세계 각국의 11만명에 달한다. 학생 선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점수'가 아니라 대학에서 배움을 얻고자 하는 '열망'이며, 대학은 그런 열망에 부합할 수 있는 교육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크로 총장의 신념이 전 세계 학생을 ASU로 끌어모으고 있는 것이다.


학생 증가는 수익성 확대로 이어졌다. ASU의 연간 수입은 65억달러(9조1000억여원)다. 2년 전 50억달러에서 15억달러가 늘었다. 마이클 크로 총장은 "자체 대학 활동으로 재원을 조달하고, 파트너십 기반 프로젝트로 수십억 달러를 추가로 운용한다"면서 "정부 지원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학은 정부기관처럼만 운영될 게 아니라, 공공성은 유지하되 수익 다각화·파트너십·자체 재원 조달 등 '기업가적 방식'으로 운영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1점차 줄 세우기로 소수 정예 인재를 뽑고도 정작 글로벌 대학 순위에 이름을 못 올리고, 이들이 낸 등록금으로 살림을 꾸리면서 동결된 등록금 탓에 재정이 어렵다고 호소하는 국내 대학과 대조적이다.

마이클 크로 애리조나주립대 총장이 서울 종로 포시즌스 호텔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마이클 크로 애리조나주립대 총장이 서울 종로 포시즌스 호텔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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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국처럼 오지선다형 시험 점수로 학생 순위를 매겨 대학 문을 닫아버리는 폐쇄적 구조로는 더이상 대학이 살아남기 어렵고, AI 시대에 필요한 인재도 길러내지 못한다고 진단했다. 크로 총장은 한국식 대입제도에 대해 "학교 성적에 과도하게 의존하면 지적 유형의 스펙트럼이 좁아지고, 사회의 궁극적 창의성이 제약된다"고 했다. 그는 "입학 기준만 계속 높이면 대학은 성장하지 못하고, 자격을 갖춘 이들마저 배제된다"며 "우리는 배제가 아닌 포용을 지향한다"고 강조했다. ASU는 배움의 열망이 있는 이들에게 입학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산학협력을 통한 인재 양성으로 이어진다. 대학이 기업에 나갈 인재를 길러내는 것뿐만 아니라 이미 산업현장에 있는 인재들이 업무에 필요한 능력을 배우기 위해 대학을 찾는 수요에도 적극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일괄적으로 대학에 입학하는 모습만 떠올리는 국내 입시 구조에서는 생소한 장면이다.


크로 총장은 "ASU는 기업의 구체적 수요를 확인해 커리큘럼과 재교육 프로그램을 설계한다"고 알렸다. 재직자에게 무상에 가까운 디지털 학위 경로를 열어 인재를 리스킬링·업스킬링하고, 해외 생산거점의 특수 수요에는 현지 대학과 협력해 맞춤형 인재를 길러내는 식이다. 크로 총장은 스타벅스와 인텔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스타벅스에 일하는 사람 중에는 대학에 갈 필요를 못 느낀 재직자가 많았다"며 "이들에게 무상에 가까운 온라인 학위 경로를 만들어 실무적인 부분을 가르쳤고, 지금까지 2만명 이상이 ASU 학위를 받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인텔은 베트남 호찌민시의 패키징 시설에서 일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하다고 ASU에 요청했다"며 "이에 베트남 6개 대학과 협력해 석박사급 엔지니어 300명을 양성했다"고 했다.


마이클 크로 애리조나주립대 총장이 서울 종로 포시즌스 호텔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마이클 크로 애리조나주립대 총장이 서울 종로 포시즌스 호텔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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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 총장의 철학은 분명하다. 대학의 목표를 '대학 자체'에서 '사회 전체'로 확장하고, 학습 방식은 디지털·AI와 결합해 더 빨리, 더 넓게, 더 깊게 배우는 체제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는 "대학 문화를 '혁신 지향'으로 바꾸고, 대학 자체가 아니라 지역사회와 국가의 성공을 목표로 모두가 이를 향해 일하는 것이 '혁신의 핵심'"이라고 역설했다. 크로 총장은 대학이 다른 대학과의 서열 경쟁에 갇히는 순간 변화 동력은 약해지며, 반대로 대학의 존재 목적을 사회적 가치 창출로 재정의할 때 혁신은 캠페인이 아니라 운영 원리가 된다고 본다.


한국 대학에 보내는 메시지도 명확하다. 학생 선발에서는 '배울 수 있는 길'을 여러 개 제공해 창의적 인재를 뽑을 수 있도록 하고, 대학에서는 학과·대학 단위의 다양한 시도를 허용해야 하며, 산학협력은 수요자 맞춤 설계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대학도 산업만큼 빠른 속도로 혁신해야 한다"면서 "한국 대학들도 가속도를 높여야 할 때"라고 주문했다.





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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