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투 등급 하향, 왜?"…무디스, 국내 7개 증권사 신용평가 뜯어보니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최근 호실적 기록 속에 '국내 1호 종합투자계좌(IMA) 사업자' 타이틀까지 노리고 있는 한국투자증권의 신용등급을 강등하면서, 여타 국내 증권사들의 신용평가 상황에도 눈길이 쏠리고 있다. 다만 무디스의 평가 결과가 국내 신평사들의 신용등급 결과 또는 모험자본 확대 방침을 밝힌 다른 경쟁사들의 행보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진단이 나온다.


3일 아시아경제신문이 지난 6~9월 무디스가 공개한 국내 증권사 대상 신용평가 보고서 7건을 취합한 결과, 등급 하향 내용이 포함된 것은 한국투자증권이 유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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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디스는 지난달 25일 공개한 크레딧 오피니언 보고서에서 한국투자증권의 장기외화 표시 기업 신용등급과 선순위 무담보채권 등급을 기존 'Baa2'에서 'Baa3'로 하향 조정했다. Baa3는 투자 적격 등급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단기 등급도 'Prime-2'에서 'P-3'로 떨어졌다.


강등 배경으로는 이른바 '고위험 고수익' 전략으로 동종업계 대비 위험선호도와 레버리지가 높아진 점이 꼽힌다. 무디스는 보고서에서 "동종 국내 업계 대비 수익성이 높고 시장 기회를 적극적으로 포착한다"면서도 "위험선호도가 높다. 단기 자금 조달에 대한 높은 의존도와 장기 자본의 높은 사용 비중으로 인해 유동성과 자금 조달구조가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한국투자증권의 위험 선호 비율은 24.5%로 경쟁사 평균(20%)을 웃돈다.


무디스가 최근 공개한 국내 증권사 7곳의 장기외화 발행 신용등급을 살펴보면 IBK투자증권이 A1으로 가장 높다. 이어 NH투자증권, KB증권, 신한투자증권이 A3를 나타냈다. 이 가운데 신한투자증권의 경우 한국투자증권의 등급 강등 직후인 지난달 26일 등급 유지 및 등급전망 상향(안정적, Stable) 내용이 포함된 최신 리포트가 나왔다. 미래에셋증권과 삼성증권의 신용등급은 한국투자증권보다 한단계 높은 Baa2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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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등급은 각사의 독자신용등급(Standalone assessment)에 정부 및 모기업의 지원 가능성을 반영한 결과로 매겨진다. 증권업은 업황 특성상 리스크가 더 크고 자본구조가 다른 금융권에 비해 취약한 탓에, 독자신용등급 기준 국내 민간 기준 Ba1이 최고 수준이다. 7개사 중에서는 IBK투자증권, 신한투자증권, NH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이 Ba1을 받았다. KB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은 이보다 한 단계 낮은 Ba2다.


사실상 엇비슷한 독자신용등급 싸움임에도 최종등급(장기외화발행등급)에서 IBK투자증권(A1)이 두드러지게 높은 배경으론 '뒷배'가 꼽힌다. IBK투자증권의 경우 기획재정부가 모기업인 기업은행의 지분 62%를, 국민연금이 7%를 소유하고 있다. 무디스 또한 지난 6월 공개한 보고서에서 "IBK투자증권의 A1 신용등급에는 Ba1 수준의 독자신용등급에 더해 모기업인 IBK기업은행(Aa2, 안정적), 한국 정부(Aa2, 안정적)로부터의 매우 높은 수준의 지원 가능성을 반영해 각각 두 단계, 네 단계 상향 조정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IBK투자증권에 이어 독자신용등급과 장기외화발행등급 간 차가 두 번째로 큰 증권사는 KB증권이다. KB증권의 독자등급은 한국투자증권과 마찬가지로 7개사 중 가장 낮은 Ba2지만, 최종등급은 5계단 뛰었다. 무디스는 지난 6월 KB증권에 대한 보고서에서 "Ba2 수준의 독자신용평가에 계열사인 KB금융지주와 국민은행으로부터의 매우 높은 수준의 지원가능성에 대한 평가로 4단계 상향조정했다"며 "필요시 한국 정부로부터 보통 수준의 공적 지원 가능성에 따른 상향 조정도 1단계 가정했다"고 언급했다.


무디스의 투자등급 기준은 최고등급인 Aaa부터 투자적격등급 중 가장 낮은 Baa3까지 4개 등급군, 10단계로 구성된다. 그 이하는 정크등급에 해당한다.


다만 이러한 등급 순위가 '위기 시, 안정적 자금조달이 가능한 순위'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무디스가 한국투자증권의 외화발행등급을 하향한 이후 시장 반응도 크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타 증권사 관계자는 "외화채권 발행을 잘 안 하기 때문(에 여파가 적다)"이라며 "굳이 따지자면 발행 시 외화채권 발행 금리가 올라갈 순 있다. 국내 발행 금리 역시 조금 올라갈 가능성, 채권 롤오버 시 이자부담이 커질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투자증권 역시 무디스와 달리, 오히려 글로벌 신평사 S&P가 등급 전망을 상향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속되는 호실적이 증명하듯, 높은 수익성을 유지하면서 통제 가능한 수준의 위험투자를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시장 안팎에서는 이번 결정이 국내 신용평가사에 미칠 여파도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한 신평사 관계자는 "무디스는 외화기준의 신용력 평가, 국내 신평사는 원화기준의 전반적 신용도를 평가한다"면서 "굳이 따지자면 '시장의 시그널' 정도로만 보는 게 정확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 역시 "무디스는 글로벌 신용평가사 중에서도 특히 보수적"이라고 짚었다. 현재 국내 3대 신평사 모두 한국투자증권의 선순위 회사채에 AA를 부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무디스가 한국투자증권의 등급을 하향하면서 모험자본 투자 확대 부분을 지적했다는 점을 주목하면서 정부의 모험자본 확대 방침과 맞물려 향후 증권사 신용평가가 더 깐깐해지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한 증권사 관계자는 "정부방침 상 모험자본을 확대해야 하는 것은 맞으나, (더 위험한) 부동산 PF를 줄이기 위한 의도가 있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국내외 신평사들이 발행어음 증가 등을 통한 레버리지 비율을 한층 꼼꼼하게 살필 수는 있을 것이란 진단이다.


지난 6~9월 무디스가 내놓은 이들 7개사의 신용평가 등급전망은 모두 '안정적'을 기록했다. 이는 향후 12~18개월간 등급 변동 가능성이 작다는 의미다. 기존에 '부정적'이었던 신한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의 최근 등급전망 상향이 반영된 결과기도 하다. 다만 기존 장단기 외화표시 신용등급을 유지하며 등급전망이 상향된 신한투자증권과 달리, 한국투자증권의 경우 등급 하향에 따라 무디스의 신용등급 전망이 안정적으로 상향된 케이스다. 무디스는 이번 보고서에서 한국투자증권의 위험선호 비율이 20% 수준으로 축소되고, 레버리지 6배 미만을 유지하고, 장기 자금조달 구조 개선이 이뤄질 경우 등급 상향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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