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 상당수는 건강보험 재정이 중증·희귀질환자를 더 많이 지원할 수 있도록 감기와 같은 경증질환 보장을 줄이는 데 동의한다는 설문 결과가 나왔다. 건보 재정이 한계에 달하고 중증·희귀질환자들의 치료와 의약품비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건보 보장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29일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권용진 교수팀이 공개한 '중증질환 치료제의 환자 접근성 강화를 위한 건강보험 재정 운영 효율화 방안' 연구에 따르면, 일반인 1000명에게 '중증질환자가 경증질환자보다 우선 건강보험 보장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한 결과 응답자의 18.5%가 '매우 그렇다'를, 55.9%가 '그렇다'를 선택했다. 적극적인 찬성 의사를 밝힌 국민이 74.4%인 셈이다. '희귀질환자가 경증질환자보다 우선 건강보험 보장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도 '매우 그렇다'가 18.6%, '그렇다'가 59.6%로 동의하는 응답이 78.2%를 차지했다.
중증질환은 암, 심장·뇌 질환과 같이 증상이 매우 위중하고 완치가 어려우며 치료를 위해 고도의 의료 서비스와 비용이 드는 질병을 일컫는다. 희귀질환은 유병인구가 2만명 이하로 적거나 진단이 어려워 유병자 수를 알 수 없는 질환을, 난치성질환은 치료법은 있으나 완치가 어렵고 치료를 중단하면 사망하거나 심각한 장애를 초래할 수 있는 질환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루게릭병, 척수성근위축증, 파킨슨병 등이 있다.
하지만 이런 질환을 모두 보장하기 위해 건강보험료를 계속 인상할 수 없는 데다 이미 건보 재정 자체도 한계에 달한 상황이다. 이에 연구진이 '중증질환 보장 강화를 위해 건강보험에서 경증질환 보장 범위를 축소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을 결과, 응답자의 9%가 '매우 그렇다', 37.6%가 '그렇다'고 답했다. '희귀질환 보장 강화'에 대한 같은 질문에도 '매우 그렇다'가 9.4%, '그렇다'가 43.3%로 찬성 비율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보통이다'는 답을 포함할 경우 두 질문 모두 응답자의 80% 이상이 동의했다.
또 이들 응답자의 60.0%는 감기와 같은 경증질환에 대한 건보 보장이 축소될 경우 병원 방문 횟수를 줄이겠다고 답했다. '경증질환 진료 시 보장금액이 감소하고 본인부담금이 증가한다면 진료를 받지 않고 자가 관리를 하겠다'고 밝힌 경우가 71.7%였다.
권용진 교수는 질병의 심각성과 사회적 비용을 고려해 건보 보장을 중증·희귀질환 중심으로 재조정하고, 제네릭 의약품의 약가를 합리적으로 조정해 절감된 재원을 중증·희귀질환 치료를 위한 혁신 신약에 재투자할 것을 제언했다.
권 교수는 "이번 조사에서 국민들도 건보 재정의 우선순위 재조정에 동의하고 있음을 확인했다"며 "혁신 치료제의 특성을 반영해 급여 결정 제도를 보다 유연하게 운영함으로써 환자 중심 치료 환경을 조성하고 재정의 효율성과 투명성도 함께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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