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너무 불편하네요”…전산망 마비에 주민센터 ‘북새통’

번호표 쥔 시민들 발 동동
무인 발급기도 서비스 중단
생활 민원까지 줄줄이 차질

"회사에 출근하기 전에 주민센터 먼저 왔습니다. 너무 불편하네요."


29일 서울 마포구 대흥동주민센터에서 시민들이 대기하고 있다. 변선진 기자

29일 서울 마포구 대흥동주민센터에서 시민들이 대기하고 있다. 변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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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대전 본원 화재로 전산망 마비 사태가 나흘째 이어지는 가운데 월요일 아침부터 주민센터엔 각종 서류를 떼려는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29일 오전 9시께 서울 종로구 사직동 주민센터에서 만난 유인성씨는 "인감증명서를 떼려고 문 열기 10분 전부터 와서 기다렸다"며 "원래는 인터넷으로 하면 되는 건데 몇십 분이 걸렸다"고 하소연했다. 강남구 역삼1동 주민센터에서 만난 김모씨(32)는 "업무상 서류를 떼러 왔는데 회사에서 잠깐 나와 기다리는 중"이라며 "일찍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저보다 먼저 온 사람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일부 주민센터 무인민원발급기에는 '서비스 일시 중단' 문구가 붙어 있었다. 안내문에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인해 장애 복구 시까지 발급 서비스가 중단됨을 알려드립니다"라며 "이용에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하다"고 적혀 있었다.


29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1동주민센터 무인민원 발급 기계에 ‘서비스 일시중단’ 안내문이 붙어있다. 이은서 기자

29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1동주민센터 무인민원 발급 기계에 ‘서비스 일시중단’ 안내문이 붙어있다. 이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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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부동산 매매·임대차 계약을 준비하던 사람들이 큰 불편을 호소했다. 부동산거래관리시스템(RTMS) 접속이 막혀 온라인 계약 신고가 불가능해졌고, 토지대장·지적도 등 필수 서류 열람도 중단됐다. 직장인 김모씨는 "오늘 임대주택 계약 날인데 온라인으로 주민등록등본 발급이 안 돼 직접 찾으러 왔다"며 "주말 내내 계약 시간을 못 맞추면 어쩌나 걱정했다. 이런 국가 중요 시스템은 정부가 좀 더 신경 써서 관리했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박주연씨(25)는 "청약에 당첨돼 계약 서류를 준비해야 하는데 정부24 사이트가 안 돼 황당했다"며 "오늘 안에 시스템에 서류 등록이 돼야 하는데 조마조마하다. 시간 안에 안 될까 봐 계속 신경이 쓰인다"고 말했다.

생활 민원도 차질을 빚었다. 서울 종로구에 사는 최영범씨(38)는 "여행용 가방이랑 매트를 버리려고 했는데 인터넷으로 안 돼 주민센터에 오게 됐다"고 했다. 이경수씨(87)는 "가족관계증명서와 복지카드 신청이 필요해 왔다"며 "사람이 많은데 참고 기다려야지, 달리 방법이 있느냐"고 했다. 이효애씨(78)는 "해외 증빙 서류가 필요한데 전산상 확인이 안 되고 있다"며 "직원이 전화했다는데 10분은 더 기다리라고 한다"고 토로했다.


29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1동주민센터에서 시민들이 서류 발급을 기다리고 있다. 이은서 기자

29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1동주민센터에서 시민들이 서류 발급을 기다리고 있다. 이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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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은 화재 한 번에 모든 행정이 마비되는 게 말이 되느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대학생 이현성씨(23)는 "주민등록증을 잃어버려 재발급 받으러 왔는데, 아직 안 된다고 해서 돌아간다"며 "언제까지 이럴지 몰라 답답하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정모씨는 "오늘 최종면접인데 병적증명서를 발급받으러 급하게 왔다"며 "면접이 오후라 다행이지 오전이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했다.


창구 직원들도 쉴 틈이 없었다. 주민센터가 문을 열자마자 몰려든 민원인들을 응대하느라 민원실은 북새통을 이뤘다. 한 직원은 "아무래도 무인 발급이 안 되다 보니 평소보다 민원인이 많이 몰렸다"며 "민원 처리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릴지 가늠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국정자원 화재로 중단된 서비스는 모두 647개다. 이 가운데 96개는 화재로 직접 피해를 본 시스템이며, 나머지 551개는 전산실 항온·항습기가 꺼지자 보호를 위해 선제적으로 가동을 중단한 시스템이다.


정부는 이들 551개 시스템을 순차적으로 재가동해 정상 여부를 점검할 계획이다. 다만 전소된 96개 시스템은 국정자원 대구센터 민관협력형 클라우드 존으로 이전해야 해 복구까지 최소 2주가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신문고, 국가법령정보센터, 공무원 내부업무망인 온나라시스템 등 주요 서비스가 여기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변선진 기자 sj@asiae.co.kr
박승욱 기자 ty1615@asiae.co.kr
최영찬 기자 elach1@asiae.co.kr
이은서 기자 lib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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