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비밀 자금의 은신처로 불릴 정도로 엄격하게 사생활을 보호해온 스위스에서 전자 신분증 도입안이 통과됐다. 연합뉴스는 28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과 가디언 등을 인용해 "스위스 국민투표에서 전자 신분증 도입안이 찬성률 50.4%로 가까스로 가결됐다. 나머지 49.6%는 전자 신분증 도입에 반대했다"고 보도했다. 투표율은 49.55%로 기록됐다.
이처럼 전자 신분증 도입안이 겨우 통과된 것은 의외의 결과로 평가된다. 앞서 여론조사에서는 최대 60%의 국민이 전자 신분증 도입에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스위스 당국과 상원과 하원 모두 이 계획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지난 2021년 전자 신분증 도입 여부를 두고 국민투표가 실시된 적 있으나, 개인정보를 민간 기업이 관리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 반대가 약 64%로 부결된 바 있다. 그동안 스위스 정부는 전자 신분증 시스템을 정부 관리 아래 두기로 하는 등 개인정보 유출 우려를 완화하기 위해 여러 개선 사항을 마련했다. 정보는 개별 사용자의 스마트폰에만 저장되고, 특정 기관이 나이나 국적 등 개인 정보를 요구할 경우 해당 세부 사항만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전자 신분증 도입 찬성파들은 전자 신분증이 도입되면 생활이 더욱 편리해지고, 관공서에 가지 않고도 여러 행정 절차를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사생활을 중시하는 스위스 특성상 전자 신분증이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반대파들은 개인 정보를 통해 사람들을 추적하거나 마케팅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전자 신분증은 선택 사항이며 실물 신분증도 사용할 수 있지만, 향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스위스는 지난 17세기 이후 은행 비밀주의를 철저히 보장했으며 이 역시 개인의 재정을 국가의 감시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도입됐었다. 다만 2010년대 이후 국제적인 금융 정보 공조가 강화되면서 비밀 계좌를 보호하던 연방법 규정을 삭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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