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차이를 용광로처럼 녹이는 게 국회 역할 아닙니까. 왜 그걸 안 하려고 하나요. 윤석열 정부의 잘못이 그거 아닌가요. 여러분이 비판했듯, 힘에 의해 운영해 독재라고 했고,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왜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려고 하나요."
지난 22일 정부조직법을 심사하던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 회의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을 향한 고언이 나왔다. 이성권 국민의힘 의원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두고서 '독재'라고까지 표현하며 여당 속도전을 막아 세우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24일 법제사법위원회 체계 자구 심사, 25일 본회의 상정, 26일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종결 후 정부조직법은 곧바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정부조직법이 지난 15일 발의된 것을 감안하면 11일 만이다. 발의부터 처리까지 박근혜 정부는 51일, 문재인 정부는 42일, 윤석열 정부는 151일 만인 것을 고려하면 번갯불에 콩 볶는 속도였다.
민주당은 새 정부가 '일을 할 수 있게끔 정부조직법은 정부와 집권당에 맡겨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정부조직법 등을 사전에 준비할 수 있는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한 정부인 만큼 하루라도 빨리 국정철학에 맞는 정부 조직을 갖출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정기획위에서 충분히 검토했다는 주장도 더해졌다. 하지만 3년 전 야당 시절 민주당은 여성가족부 폐지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새 정부의 정부조직법을 막아 세운 전적이 있다. 결국 정부조직법은 여가부 폐지가 빠진 채 정부 출범 후 9개월 만에 처리된 바 있다.
속도가 강조되다 보니 졸속 심사에 대한 우려가 컸다. 정부조직법 소관 상임위원회인 행안위는 정부조직법 발의 하루 만에 법안을 회부하고 17일 전체 회의에 올린 뒤 18일에 소위를 열었다. 법안소위는 2시간20분 만에 마무리했다. 당시 소위 심사 내용을 토대로 대안(代案)이 마련됐지만 정부조직법 부칙에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을 기후에너지부장관 등으로 잘못 쓰거나, 법안별 소관 부처명이 잘못 기재돼 주말 사이에 행안위 전문위원 등이 바로 잡아야 했다.
졸속 심사를 국회 직원들이 주말을 반납해가며 보완한 것이다. 이마저도 틀린 내용이 나와 법사위 보완 절차를 밟았다. 디테일에 문제가 생긴 건 이번 정부조직법의 경우 627개의 법이 부칙 형태로 동시에 개정되는데 심사에 들인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영향을 받는 다른 상임위 의견을 듣는 절차도 빠졌다.
국회는 입법에서 잘못을 막기 위해 숙려기간 규정을 두고 있다. 법안 발의 후 상임위에 상정되기까지 15~20일, 법사위 체계 자구 심사 때도 5일간의 경과 규정이 있다. 국회의원도, 국회의원을 지원하는 상임위도 법안을 살펴볼 시간을 갖추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런 숙려기간은 정부조직법 심사 과정에서 무시됐다.
대체 여당은 왜 이리 속도를 냈을까. 이재명 대통령의 뜻은 아닌 듯하다. 이 대통령은 "솔직히 약간 더 효율적으로 일하자는 것이지 정부조직법 개편 안 한다고 일 못 하는 거 아니다"고 했었다. 그보다는 추석 전 검찰청 폐지를 마무리 짓겠다는 민주당 지도부 의중이 더 강하게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의석수를 앞세워 디테일도 챙기지 않고, 반대 의견을 들여다보지도 않은 채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이 이 정부의 성공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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