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자동차는 더 이상 단순 이동 수단이 아니다. 현대차 · 기아 연구소와 사내 벤처 그리고 스타트업 현장에서는 공상 과학소설에서 읽을 법한 기술들이 개발되고 차는 날마다 새로워지고 있다.
여름철 열을 밖으로 배출하는 틴팅 필름, 긁힌 흠집을 스스로 치료하는 나노 코팅, 페인트칠을 하지 않아도 매끈하고 선명한 색을 띠는 무도장 차체 성형 기술, 여기에 버섯 균사체로 만든 시트 가죽과 공기 주입이 필요 없는 타이어, 라스트마일 배송을 책임질 자율주행 로봇까지 새로운 차를 만들 기술들이 모두 개발을 마쳤다.
아직 공상에 가까운 얘기처럼 느껴지지만 이 기술들은 환경 규제 대응, 비용 절감, 안전 강화라는 자동차 산업의 절박한 요구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미래 이동 수단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현대차의 실험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내일을 위한 생존 전략에 가깝다. 현대차그룹 연구진과 관련 스타트업이 개발한 기상천외한 발명을 하나씩 따라가며 기술 발전이 우리 일상과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한번 상상해보자.
대한민국의 7월 한낮. 외부 기온이 25도만 넘어도 한낮 차량 내부 온도는 섭씨 50도까지 급격히 올라간다. 뙤약볕 아래 서 있는 차를 멀리서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듯하다. 차 문을 열자 뜨거운 공기가 밀려온다. 운전석에 앉는 순간 뜨끈한 시트가 몸을 감싼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찜통'일 거라 각오했는데, 막상 앉아보니 견딜 만하다. 에어컨을 켜자 차 안은 금세 쾌적해졌다.
비밀은 자동차 유리에 붙인 '투명 복사 냉각 필름' 덕분이다. 이 필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얇은 4개의 층으로 구성돼 있다. 태양광 중 열을 발생시키는 파장인 자외선과 근적외선을 효과적으로 반사하고, 일부 층에선 차량 내부에서 생긴 복사열(원적외선)을 바깥으로 방출한다. 덕분에 차량 내부 온도가 필름을 적용하지 않았을 때보다 최대 10도 이상 낮아진다.
기존 '선팅 필름'은 단순히 햇빛을 차단하는 수준이었다면 이 기술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차가 스스로 열을 내보내는 능동적 냉각을 구현했다. 또 기존 필름은 열 차단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틴팅의 농도가 짙어지면서 시야 확보가 어려웠다. 이 기술은 열 차단·배출의 효과를 누리면서도 유리의 투명도는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산업적 의미도 크다. 차량 냉방은 연료와 배터리를 크게 소모하는 요소 중 하나다. 이 필름이 보편화되면 여름철 전기차 주행거리가 늘어나고, 연비와 전비 효율 개선이 기대된다. 에어컨 사용이 줄면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감소한다. 강화되는 글로벌 환경 규제에도 대응할 수 있다.
후진 주차를 하다가 주차장 기둥에 차를 살짝 긁었다. 멀리서 보면 티가 나지 않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흠집이 꽤 깊었다. 속은 쓰렸지만 일단 하루 정도 기다려보기로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셀프 힐링(self-healing)' 기능이 있는 고분자 코팅 옵션을 선택해둔 덕분이다.
다음날 출근길에 확인해보니 전날 생겼던 스크래치가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미세한 상처나 스크래치는 그냥 두면 자동차 상태나 안전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첨단운전자보조기능(ADAS)에 사용되는 센서나 카메라 렌즈가 손상되면 올바른 신호를 감지하기 어렵고 차체에 난 흠집이나 균열은 부식으로 이어져 사고 시 충격 흡수력까지 떨어질 수 있다.
나노 셀프 힐링 기술은 사람 피부에 새살이 돋듯 자동차 표면의 스크래치를 스스로 회복하는 원리다. 특수 코팅에 포함된 고분자 물질이 상처가 날 때 일시적으로 분리됐다가 이후엔 가역적 화학반응을 통해 다시 결합하면서 원래 상태로 복원된다. 기존 방식과 달리 촉진제를 따로 쓰지 않아도 되고 열을 가할 필요도 없다. 상온에서 반복적인 재생이 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장맛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여름날. 앞 유리를 때리는 빗방울을 와이퍼가 쉴 새 없이 닦아낸다. 시야가 흐려져 운전이 쉽지 않아 첨단운전자보조장치(ADAS)를 켰다. 이런 날씨에 반자율주행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까 싶었지만 기술력을 믿어보기로 했다.
이 차에는 특별한 카메라 센서 클리닝 기술이 적용돼 있다. 렌즈 앞에 씌운 커버 글라스를 회전시켜 오염을 제거하는 '로테이터캠(Rotator-Cam)' 기술이다. 흙이나 먼지 같은 오염물질은 물론, 렌즈에 맺힌 습기까지 효과적으로 없애준다.
기존의 렌즈 클리닝 방식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팝업 노즐이 튀어나와 워셔액을 세차게 뿌려 이물질을 제거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워셔액이나 빗방울이 렌즈 표면에 뭉치면서 오히려 시야를 가리는 단점이 있었다. 둘째는 전동식 소형 와이퍼를 달아 직접 닦아내는 방식이다. 빗방울 제거에는 효과적이었지만 와이퍼가 왔다 갔다 하면서 카메라 시야를 가린다는 한계가 있었다.
현대차그룹이 2023년 개발한 로테이터캠 기술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했다. 카메라 렌즈를 보호하는 커버 글라스를 바깥에 한겹 씌우고, 이를 회전시키면서 고정된 와이퍼로 표면을 닦아내는 구조다. 워셔액 공급장치도 함께 적용돼 있어 먼지와 진흙, 물방울까지 깔끔하게 제거할 수 있다. 와이퍼가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시야를 방해하지도 않는다.
여기에 AI가 날씨와 오염 정도를 감지해 워셔액 분사량을 조절하고 렌즈와 글라스 사이에 습기가 차지 않도록 바람을 불어 넣어준다. 수십 개 이상의 카메라 센서가 장착되는 자율주행차에서 카메라 성능은 곧 주행 안정성과 직결된다. 로테이터캠 기술은 센서의 신뢰도를 높일 뿐만 아니라 워셔액 사용을 최소화해 유지비 절감에도 도움을 준다.
새 차에 올라타자 은은한 가죽 냄새가 풍긴다. 손끝으로 시트를 쓸어보니 부드럽고 질감도 고급스럽다. 얼핏 보면 천연가죽과 다를 바 없지만, 사실 이 시트는 소가죽이 아니라 '버섯'으로 만들어졌다.
전 세계적으로 동물 가죽을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 '마이셀리움(Mycelium·균사체) 가죽' 소재 개발이 주목받고 있다. 마이셀리움은 버섯의 뿌리 조직이다. 실처럼 얽히며 자라는 특성이 있어 가죽과 유사한 질감과 강도를 구현할 수 있다. 나무 부스러기나 톱밥 등 유기물 위에서 균사체 조직을 배양한 뒤 이를 특수 공정으로 가공하면 천연가죽 못지않은 내구성과 부드러움을 갖춘 친환경 소재가 된다. 무엇보다 제작과 폐기 과정에서 환경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소를 도축할 필요가 없고 화학 약품 처리도 최소화되며, 폐기물은 100% 생분해된다.
현대차 사내 벤처 기업 출신인 '마이셀'은 버섯 균사체를 활용한 친환경 가죽을 전문적으로 개발하는 스타트업이다. 현대차그룹의 오픈이노베이션 플랫폼 제로원 프로그램을 통해 성장해 2020년 분사했다.
이 회사의 연구진은 AI를 활용해 균사체의 배양 조건을 정교하게 제어함으로써 내구성과 질감을 천연가죽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다양한 색상과 패턴 구현도 가능하게 했다. 각국의 친환경 인증 기준에 부합하는 소재를 완성해, 자동차 시트와 인테리어 패널은 물론 패션, 가구, 건축 자재까지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특히 완성차 업계에서는 유럽을 중심으로 생산 전 과정 평가(LCA)를 통해 발생하는 탄소를 줄이라는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가죽 시트는 완성차 제조 공정에서 상당한 탄소를 배출하는 영역이다. 비건 레더를 적용하면 가축 사육 과정에서 발생하는 메탄가스와 화학적 무두질 과정의 탄소 배출을 줄이면서 차 한 대당 '탄소 발자국'을 크게 감소시킬 수 있다.
2025년 현재 자동차 인테리어에 '버섯 가죽'이 적용된 사례는 아직 콘셉트카의 일부 패널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기술적 완성도가 빠르게 올라온다면 머지않아 버섯에서 자라난 시트 위에 앉아 도로를 달리는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다.
주말 아침 시동을 걸고 나가려는데 계기판 위 타이어 경고등에 불이 켜졌다. 겉보기엔 멀쩡했지만, 공기압 수치를 확인해 보니 한쪽 타이어만 급격히 떨어져 있었다. 아마 어제 도로 위에 떨어진 못이나 파편을 밟은 모양이다. 하는 수 없이 가까운 카센터에 들러 펑크 난 타이어를 손봤다. 그 사이 주말에 예정됐던 일정은 줄줄이 밀려버렸다.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타이어 펑크, 만약 앞으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면 어떨까?
현대차그룹이 투자한 미국 스타트업 '스마트 타이어 컴퍼니'는 바로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립된 회사다. 이 회사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화성 탐사 로버에 적용된 타이어 기술을 민간으로 확장해, 공기가 필요 없는 '초탄성 타이어'를 개발 중이다. 핵심 기술은 니티놀(NiTinol·니켈-티타늄 합금)이다. 형상기억합금인 니티놀은 외부 압력에 의해 변형되더라도 열이나 충격을 받으면 다시 본래 형태로 돌아오는 특성이 있다.
스마트 타이어 컴퍼니는 이 합금을 방사형으로 엮어 '메틀(METL)'이라는 새로운 타이어 구조를 만들었다. 고무처럼 탄력 있고 티타늄처럼 단단해, 공기를 채우지 않아도 바퀴 형태를 유지할 수 있으며 펑크가 나지 않는다. 이 회사는 2025 CES에서 자전거용 '에어리스(airless) 타이어'를 공개했는데, 관람객들은 "탄력이 고무 타이어와 거의 구분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자동차 업계도 이 기술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도심 주행뿐 아니라 장거리 운행에서도 안정성이 입증된다면, 더 이상 펑크 수리점에 들르거나 스페어 타이어를 싣고 다닐 필요가 없다. 제조 단계에서 고무와 석유 사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도 친환경 측면에선 강점이다.
실제로 전 세계는 타이어와 관련한 환경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폐타이어는 처리 과정에서 많은 탄소를 배출할 뿐 아니라, 주행 중 타이어가 마모되면서 발생하는 미세 먼지는 대기와 토양 오염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유럽연합(EU)은 타이어 마모 입자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공기 없이도 형태를 유지하는 금속 기반 타이어는 지속 가능한 이동수단으로 가는 중요한 혁신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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