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원권 속 그 대나무...보물 '삼청첩' 56면 최초 공개

광복 80주년 특별전 '삼청도도'
전쟁·변란 통과한 절의지사 작품 100점 소개
시대 걸작 '삼청첩' 56면 최초 공개

5만원권 지폐 뒷면에 담긴 대나무 그림은 조선 중기 묵죽화가 탄은 이정(李霆, 1554~1626)의 '풍죽도'(風竹圖)다. 세종대왕의 고손자인 이정은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를 통해 강풍에도 꺾이지 않는 한민족의 절개와 강직함을 드러냈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대구간송미술관에서 '삼청첩'으로 구성된 '삼청도도-매·죽·난, 멈추지 않는 이야기' 전시가 개막했다.

5만원권 지폐 뒷면의 대나무 그림인 이정의 '풍죽도'(風竹圖). 비바람에 의연히 맞서는 대나무의 모습은 한민족의 기개와 불굴의 의지를 상징한다. 서믿음 기자

5만원권 지폐 뒷면의 대나무 그림인 이정의 '풍죽도'(風竹圖). 비바람에 의연히 맞서는 대나무의 모습은 한민족의 기개와 불굴의 의지를 상징한다. 서믿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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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三淸)은 군자가 지녀야 할 태도와 마음을 상징하는 매화, 대나무, 난초를 지칭한다. 전시는 광복에 이르기까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일제강점기의 암흑기를 의연히 통과한 한민족의 정신적·문화적 힘을 되새긴다. 작품 35건 100점을 선보이며, '삼청첩' 56면 전체를 최초로 공개한다.


삼청첩은 탄은 이정의 그림과 시를 함께 엮은 시화첩이다. 임진왜란 당시 큰 부상을 입고 2년간의 회복 시기를 거친 끝에 완성했다. 당대 최고 문인이었던 최립과 한호, 차천로의 글이 더해지면서 한국 회화사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지닌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이정 '월매'. 달밤의 매화를 흑백의 수묵으로 그린 작품으로, 절개를 상징하는 매화의 고아(高雅)함을 간결하게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서믿음 기자서믿음 기자

이정 '월매'. 달밤의 매화를 흑백의 수묵으로 그린 작품으로, 절개를 상징하는 매화의 고아(高雅)함을 간결하게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서믿음 기자서믿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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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첩은 검은 비단에 금니(곱게 간 금가루를 아교 등에 개어 만든 금색 물감)로 삼청(매·죽·난)을 그려 넣은 그림으로, 화법과 서법의 예술적 조화를 인정받아 2018년 보물로 지정됐다. 삼청첩은 병자호란 당시 화재로 소실 위기를 겪었고,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반출되는 고초를 겪으나, 1935년 간송 전형필 선생 덕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간송이 치른 비용은 455원. 당시 경성의 고급 기와집 비용이 1000원임을 감안할 때 상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한민족의 본령을 되찾았다.

병자호란 당시 화재로 겉장이 불에 타고, 보관 소홀로 백화현상이 심했던 삼창첩은 2년여간의 복원 과정을 거쳐 공개됐다. 전인건 관장은 "비단 섬유에 박힌 백화를 핀셋으로 하나하나 제거하는 지난한 작업이었다. 원형을 해치지 않고 본래 색을 복원하는데 신경을 많이 썼다"고 말했다.

이정이 그린 유일한 인물화인 '문월도'. 달빛 아래에서 책을 읽는 선비의 모습을 그렸다. 서믿음 기자

이정이 그린 유일한 인물화인 '문월도'. 달빛 아래에서 책을 읽는 선비의 모습을 그렸다. 서믿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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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조선 초기 시·서·화(詩·書·畵)에 뛰어나 중국으로부터 '해동삼절'(海東三絶)이라 불린 최립의 글, 한호의 글씨, 이정의 묵죽이 어우러진 '유금강산권', 이정의 작품과 문인들의 글을 엮은 '탄은삼청첩'을 전시한다. 한국 묵죽화 명작으로 손꼽히는 '풍죽', 이정이 남긴 유일한 인물화 '문월도'도 선을 보인다.


미술관 관계자는 "이정이 충청도에 집을 짓고 수십만 그루 대나무와 함께 지냈다는 말이 있다"며 "그런 집에서 지내면 어떤 느낌일지 전시를 통해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간 작품성을 주목받지 못했지만, 독립과 광복의 염원을 소망했던 항일지사의 삼청 작품 11건 13점을 함께 소개한다. 상해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김진우의 창칼을 닮은 묵죽화와 항일독립군의 초석이 된 이희영, 을미의병 출신 박기정, 일제의 회유를 거부하고 은거했던 윤용구, 대한광복회 회원으로 군자금 모금 활동을 벌였던 대구 출신 독립운동가 김진만 등의 작품도 공개한다.

전인건 대구간송미술관 관장은 "광복 80주년을 맞이해 시대에 따라 절의지사들이 남긴 그림과 그 안에 담긴 마음을 살펴보며 오늘날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와 가치를 전달하는가를 되돌아보는 전시로 마련했다"고 의미를 전했다. 전시는 오는 12월21일까지 대구간송미술관 전시실4에서 열린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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