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신약도 자본·데이터 등 인프라 한계…대규모 투자 필요"

韓제약바이오協, AI 파마 코리아 컨퍼런스

인공지능(AI) 기반 신약 개발을 위해 데이터를 연구자들이 직접 쌓아야 하고, 작더라도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나왔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2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연 'AI 파마 코리아 컨퍼런스 2025'에서는 인공지능이 신약개발에 어떻게 쓰일 수 있을지, 한국 기업들이 무엇부터 바꿔야 하는지 등 AI 신약 개발이 구체적으로 논의됐다.

신현진 목암생명과학연구소장이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2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연 'AI 파마 코리아 컨퍼런스 2025'에서 강연하고 있다. 정동훈 기자

신현진 목암생명과학연구소장이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2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연 'AI 파마 코리아 컨퍼런스 2025'에서 강연하고 있다. 정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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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미비로 AI 신약 개발 아직 한계…자동화 실험 통한 데이터 축적 필요

윤태영 서울대 생명공학부 교수(프로티나 대표)는 항체 신약이 왜 AI로 설계하기 어려운지를 먼저 짚었다.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알파폴드(딥마인드 개발)' 같은 기술이 나오면서 'AI가 곧바로 항체를 설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성공 확률이 낮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항체에서 항원과 결합하는 영역인 'CDR(상보성 결정 영역)'이라 불리는 부위가 고정된 구조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모양을 바꾸는 성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며 "쉽게 말해 사진으로는 도무지 잡히지 않는 움직이는 표적 같은 셈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윤 교수는 "항체가 표적 단백질에 달라붙는 힘, 생산 과정에서 잘 만들어지는지, 열에 얼마나 버티는지 같은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며 기존 AI 모델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해법은 결국 "많이 만들어서 자주 시험해 보는 것"이었다. 윤 교수팀은 CDR 서열을 수천 가지 변형해 자동화된 장비로 제작하고, 전용 칩을 통해 결합력과 안정성, 생산성을 동시에 측정하는 'SPID 플랫폼'을 소개했다. 단백질과 단백질이 어떻게 붙고 떨어지는지를 단일 분자 수준에서 빠르고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이다. 칩과 자동화 장비, 형광 이미징을 결합해 연구자가 짧은 시간 안에 약물 후보물질의 작용이나 새로운 단백질 상호작용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나온 데이터를 AI에 학습시키고, 다시 AI가 제안한 결과를 채점하는 '빠른 고리'가 만들어지면 설계 정확도가 빠르게 높아진다.


윤 교수는 실제로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아달리무맙'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원조보다 더 적은 용량으로도 동등한 효과를 내는 후보 항체를 찾았다고 밝혔다. AI가 사람이 선뜻 시도하지 않던 조합을 제시해 결합력이 5배 이상 좋아진 사례도 나왔다. 그는 "한국 기업들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반복 실험 체계를 내부에 구축해 데이터를 쌓는 것"이라며 "결합력뿐 아니라 생산성, 안정성, 세포 침투력 등 여러 항목에 라벨을 붙여야 개발 막판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AI, 결국 시간과 비용 줄이기 위한 도구
윤태영 서울대 생명공학부 교수(프로티나 대표)가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2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연 'AI 파마 코리아 컨퍼런스 2025'에서 강연하고 있다. 정동훈 기자

윤태영 서울대 생명공학부 교수(프로티나 대표)가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2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연 'AI 파마 코리아 컨퍼런스 2025'에서 강연하고 있다. 정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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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진 목암생명과학연구소장은 신약개발에서 AI의 본질을 "노동과 비용을 줄이는 도구"라고 정의했다. 신약 하나가 시장에 나오기까지는 10~15년, 수천억에서 수조원이 들고 성공확률은 10%도 안 되는데, 이 과정을 조금이라도 단축하기 위해 AI를 쓴다는 것이다. 그는 AI의 역할을 세 가지로 단순화했다. ▲후보물질의 성질 '예측' ▲여러 후보 가운데 가장 나은 조합을 '최적화' ▲세상에 없는 새로운 서열 '생성'이다. AI가 가장 효과를 발휘하는 곳은 임상보다 앞단, 즉 후보물질 발굴 단계라고 짚었다. 임상 단계는 데이터가 제약사나 병원 안에 묶여 있어 AI가 학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동시에 한국이 직면한 한계를 지적했다. 국내 시장은 규모가 작고 협력이 부족해 대규모 투자를 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중국이 AI 신약 분야에서 빠르게 성과를 내는 것은 결국 자본과 규제 환경 덕분이라는 것이다. 신 소장은 "병원-기업-연구소가 데이터를 안전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연합형 인프라가 필요하다"며 "실제 환자 데이터를 바탕으로 임상시험을 가상으로 돌려볼 수 있는 '디지털 쌍둥이' 모델을 활용하면 개발 속도를 높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두 사람의 발표는 결국 같은 결론으로 모였다. 신약개발에서 AI가 진짜 힘을 발휘하려면 화려한 알고리즘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좋은 데이터와 빠른 실험-검증 루프라는 것이다. 윤 교수는 "대기업에서 성공 사례 하나가 나오면 시장의 의구심이 풀리고 물꼬가 트일 것"이라고 내다봤고, 신 소장도 "자본과 규제를 풀어 대규모 투자를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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