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요 싱크탱크의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對中) 정책 방향성이 모호하다며 한국 역시 급변하는 정책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고 짚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군사적 야욕을 드러내고 있어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정책을 한국이 진지하게 여겨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앤드루 여 한국 석좌는 지난 10일(현지시간) 워싱턴D.C.의 브루킹스연구소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나 "워싱턴 전문가들도 트럼프 행정부가 대중 정책과 관련해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정확하게 이해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날 간담회는 한국언론진흥재단과 미국동서센터의 한미 언론인 교류 프로그램 일환으로 진행됐다.
여 석좌는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최종 의사결정을 내리겠지만, 메시지가 섞여 있어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예를 들어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과 엘브리지 콜비 미국 국방부 정책 담당 차관은 중국에 강한 포지션을 갖고 있지만, 미 무역대표부(USTR)나 재무부, 상무부와 얘기해보면 중국과 딜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로선 이게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대중 정책 '키맨'으로 꼽혔던 콜비 차관은 미운털이 박히면서 예전만큼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이 지난 7월 우크라이나에 패트리엇 방공 미사일 등 무기 지원을 중단했다가 재개했는데, 콜비 차관이 트럼프 대통령도 모르게 이런 결정에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고 폴리티코 등이 보도했다. 다만 콜비 차관의 저서 '거부전략'이 J.D. 밴스 부통령의 외교·안보 노선과 함께 차기 국가방위전략(National Defense Strategy·NDS) 최종 초안에서 양대 축을 담당하게 됐다고 닛케이아시아는 8월 말 보도했다. 최종안은 올가을 공개될 예정이다.
여 석좌는 "D.C.에서 나오는 얘기는 앨리슨 후커(국무부 정무차관)나 케빈 김(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부차관보)처럼 국무부에 아시아 인·태 지역 경험 많은 사람들 있고,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도 한미 동맹을 중시하고 중국을 위협적인 국가로 보는 사람이라는 것"이라며 "만약 콜비 차관의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가 중심 의견이 되면 국무부에서 어느 정도 막아주지 않을까 하는 얘기도 나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다만 콜비 차관의 입지와 상관없이 주한미군 감축이라는 큰 방향성은 바뀌지 않을 것이란 진단이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내각 주요 인사들의 생각이 일치하는 지점이어서다.
여 석좌는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이 미국을 이용한다거나 돈을 충분히 내지 않는다, 왜 그렇게 많은 주한미군이 주둔하느냐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철수나 한국이 방위비를 더 분담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콜비 차관은 아예 북한이 큰 위협이 아니라 군대 조직을 바꿔서 대만 해협으로 군을 보내야 한다는 입장으로, 이유는 다르지만 결론은 같다"며 "밴스 부통령은 왜 미국이 전 세계적으로 그렇게 있어야 하냐, 외국에서 돈 낭비하지 말자는 입장으로, 모두 이유는 다르지만 주한미군 감축이라는 결론은 비슷한 거 같다"고 덧붙였다.
중국 정부가 전승절 80주년 행사인 열병식에서 보여준 군사적 야욕 등을 고려할 때 최근 미국에서 중요성이 부각된 전략적 유연성 정책을 한국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전략적 유연성은 전 세계 어느 곳에서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주한미군을 포함한 전 세계 주둔 미군이 특정 지역에 얽매이는 게 아니라 기동타격대 성격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논리로 2001년 9·11테러를 기점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시아태평양 안보 의장은 "전략적 유연성은 국방부의 아이디어이지만 백악관으로부터 100% 지지를 받는 아이디어"라며 "미국에선 무조건 유효한 개념으로, 물론 한국과 협상할 필요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략적 유연성 개념을 지난 20년과 비교하면 지금 전략적 측면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며 "조만간 발표될 새로운 국방전략에도 중국이란 위협을 다루는 게 최우선 순위이고, 미국 입장에선 중국 견제가 지금 가장 중요한 이슈"라고 지적했다.
이어 "전략적 유연성은 어찌 보면 미국 입장에선 조금 더 큰 도전과제인 중국을 다뤄야 하니, 한국은 북한 위협에 대해 주도적으로 방위해야 한다는 개념도 반영돼 있다"며 "물론 북한은 핵이 있으니 한국이 100%를 방위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고, 전통적인 기존 병력이 조금 줄더라도 핵 확장 억지는 미국이 계속 제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게 국무부나 국방부 메시지랑 백악관 메시지가 약간 섞였다"며 "국무부나 국방부는 계속 한국 정부 쪽에 확장 억지를 제공한다고 하는데 백악관에선 좀 다른 메시지가 나가니, 어려운 문제가 아니어야 할 텐데 메시지가 섞이면서 이상하게 어려워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크로닌 의장은 "미국 입장에선 물론 주한미군이 주둔하면서 한국을 방위하고 있지만 결국은 유사시에 자국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며 "미국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한국 안보에도 당연히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도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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