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내려다 본 IBM 왓슨연구소. 1960년대 지어진 이 건물은 주차장에 태양광발전 패널이 생긴 것을 제외하면 외형상 달러진 것이 거의 없지만, 이곳에서는 AI와 양자 등 미래 지향적인 연구가 지속해서 발전하고 있었다. IBM
원본보기 아이콘2010년대는 IBM에는 '잃어버린 10년'이었다. 매출은 최고치의 절반으로 쪼그라들었고 인공지능(AI)과 클라우드 등 미래 시장에선 경쟁자들에게 밀려 '한물간 공룡' 취급을 받았다. 2020년 새 최고경영자(CEO)가 취임할 당시 IBM은 미국의 주요 기술 기업 중 유일하게 지난 8년간 시장 가치가 하락한 회사라는 불명예까지 안았다. 거함 '빅 블루(Big Blue)'는 구글, 메타와 같은 후발 주자에 밀려 영원히 침몰하는 듯 보였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불씨는 있었다. 그 불씨는 다시 활활 타올랐다. 오히려 거함의 미래에 등대가 됐다. 최근에는 역대 최고 주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 진원지는 뉴욕주 요크타운에 위치한 IBM 토머스J.왓슨연구소(왓슨연구소)다. 1945년 IBM 창업주 토머스 J. 왓슨의 "인류 지식의 진보에 기여한다"는 신념 아래 탄생한 이 연구소는 혁신의 심장이었다. 잠시 혁신의 발걸음이 늦어지기도 했고 수많은 도전과 성공, 뼈아픈 실패의 순간에도 IBM이 다음을 기약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연구소가 굳건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맨해튼 소재 IBM 신사옥에 있는 '이노베이션 스튜디오'가 IBM의 '맛'만 보여줬다면 왓슨연구소는 '진면목'을 숨겨둔 곳이다. 이 곳을 2005년에도 방문한 바 있다. 그때만 해도 IBM이 본격적인 추락을 시작하던 때다. 20년 후 어떻게 변해있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고 다시 이곳을 찾았다.
입구 안내소 위에는 거대한 실리콘 칩 모양의 조형물이 있었다. 왓슨연구소가 반도체 분야의 중요한 이정표라는 것을 과시하는 듯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이동한 곳은 '싱크 랩(Think Lab)'이었다. 이곳에서 IBM은 다양한 실험 결과물을 공개했다. AI 추론에 사용하는 신경망처리장치(NPU)도 있었고 다양한 형태의 12인치 실리콘 웨이퍼들이 마치 레코드판처럼 진열돼 있었다. 각 재킷에는 웨이퍼의 존재 이유가 쓰여 있었다.
싱크랩의 자랑거리는 양자컴퓨터다. 거대한 '시스템투' 양자컴퓨터가 손님을 맞는다. 압도적인 위압감이 느껴진다. 함께 설치된 메인프레임 컴퓨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IBM의 컴퓨터들은 보통 검은색이다. 시스템투는 스테인리스 외관의 냉장고를 여러 개 붙여 놓은 모습이다. 시스템투는 현존하는 가장 최고 수준의 양자컴퓨터다.
IBM이 꾸준히 연구해온 초전도체 방식의 이 양자컴퓨터는 경쟁자의 추월을 허용하지 않는 '통곡의 벽'처럼 보였다. 이 컴퓨터에 사용된 양자처리장치(QPU)도 볼 수 있었다. 한 QPU에는 156큐비트가 담겨 있다. 한국은 최근에야 20큐비트를 시연하고 50큐비트 QPU 제작을 목표로 하고 있다. 차이가 크다. 내년에는 고전 슈퍼컴퓨터의 성능을 추월하고 2029년 양자컴퓨터의 문제로 지적되는 계산 오류를 해결한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스콧 크라우더 부사장은 "로드맵은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곳에는 많은 기업, 정부 관계자들이 찾는다. 이번 방문 직전에는 엔비디아의 연구진이 방문했음을 알 수 있는 흔적도 남아있었다.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하정우 대통령실 AI과학수석도 지난 23일(현지시간) 왓슨연구소를 방문했다. 배 장관은 IBM 측과 양자연구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도 체결했다. 양자분야에서 이 연구소와의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정우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앞줄 왼쪽에서 네번째)과 배경훈 과기정통부 장관(앞줄 왼쪽에서 다섯번째)이 IBM 왓슨 연구소를 방문해 '시스템투' 양자컴퓨터를 배경으로 기념촬영하고 있다. 과기정통부
원본보기 아이콘◆'생각하라(THINK)'의 힘= 왓슨연구소의 역사는 1945년 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 컬럼비아대학 캠퍼스에 문을 연 작은 연구실에서 시작된다. '왓슨 과학 컴퓨팅 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이곳은 당시 IBM 회장이었던 토머스 J. 왓슨 시니어의 확고한 신념이 담긴 공간이다. 그의 목표는 단기적인 이익 추구를 넘어 인류 지식의 진보 자체에 기여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과학적 흥미 때문에 채택될 것이며 다른 어떤 고려 때문도 아닐 것"이라는 초대 소장의 말처럼 연구소는 상업적 목적에서 벗어나 순수 과학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받았다.
이런 정신은 그의 아들이자 2대 CEO인 토머스 왓슨 주니어에게도 이어졌다. 연구소 이름에 아버지와 아들, 두 사람의 이름이 함께 새겨진 이유다. 왓슨 주니어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일독을 권했던 책 'IBM, 창업자와 후계자(Father, Son & Co)'의 저자이기도 하다.
'생각하라'는 창업주의 슬로건 아래 왓슨연구소는 단순한 기업 부설 연구소를 넘어 미국의 과학 기술 발전을 이끄는 국가적 싱크탱크의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냉전 시대에는 핵무기 시뮬레이션과 같은 국가 안보와 직결된 핵심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미국 정부의 가장 신뢰받는 기술 파트너로 자리매김했다. 인류 최초의 달 착륙을 이끈 아폴로 계획 당시, 인간을 도와 우주 비행선의 궤도를 정확히 계산해낸 것 역시 바로 왓슨연구소 컴퓨터였다. 이 극적인 과정은 훗날 영화 '히든 피겨스'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지기도 했다.
왓슨연구소에서 IBM의 진짜 경쟁력을 들을 수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IBM 연구원은 "지난 19년간 이곳에서 일하면서 저녁 식사를 거른 적이 없고 주말에 출근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그가 강조한 것은 '시간적 여유'가 창의성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였다. 또 백발의 70대 연구자는 개발팀 리더라고 했다. 최고의 전문가가 지속적으로 기술을 탐구하고 방향을 제시한다는 설명이다.
"리더들은 명확한 방향만 제시할 뿐 구체적인 방법까지 지시하지 않는다. 정해진 기간 안에 결과물을 내놓으라는 압박도 없다. 그러면 연구원들은 스스로 생각하게 된다. '이걸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하면서." 물론 연구원에 대한 적절한 보상도 필수다.
이런 문화는 'R&D는 비용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회사의 확고한 철학이 있기에 가능하다. 왓슨연구소는 축적된 특허 라이선스 판매만으로도 막대한 수익을 올리며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장기적인 연구를 이어갈 동력을 스스로 마련한다. 충분한 보상은 다시 연구에 대한 몰입도를 높인다. 똑똑한 인재들이 틀에 박힌 반복 업무에서 벗어나 마음껏 '놀 수 있을 때' 세상에 없던 창의적인 결과물이 탄생한다는 것을 왓슨연구소는 증명하고 있었다.
◆왓슨의 LLM, 8조원 사업으로 성장= IBM의 극적인 부활 뒤에는 35년간 IBM에 몸담은 엔지니어 출신 첫 CEO, 아르빈드 크리슈나가 있었다. 그는 챗GPT가 세상에 나오기 1년 전, 왓슨연구소의 기술 브리핑에서 거대언어모델(LLM)의 잠재력을 즉시 간파하고 수십억 달러의 R&D 투자를 결정했다. 엔지니어로서의 혜안과 과감한 결단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IBM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100년 넘게 이어져 온 IBM의 오랜 관행, 'IBM 웨이(The IBM Way)'와의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검은색이나 짙은 네이비색 정장과 넥타이로 상징되던 규율과 안정, 보수적인 상명하달식 문화를 과감히 버렸다. 왓슨연구소나 최근 문을 연 맨해튼 IBM 오피스에선 더 이상 답답한 느낌의 슈트와 넥타이 차림의 직원을 찾아보기 힘들다. 복장뿐 아니라 일하는 방식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대신 그는 자율성과 빠른 실행, 그리고 끊임없는 피드백을 중시하는 '긱 웨이(The Geek Way)' 문화를 심었다. 크리슈나 CEO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실패를 꾸짖으면 아무도 도전하지 않는다"며 "실패해도 벌주지 않을 것이고 '도움이 필요하면 요청하라'라고 말하면 더 적은 사람으로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변화는 성과와 실적, 주가로 반영된다. 최근 IBM의 주가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2010년대 야심 차게 추진했던 '왓슨 헬스' 프로젝트는 '암을 정복한다'는 거창한 구호와 달리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크리슈나 CEO는 "우리가 있던 곳과 문제 사이의 격차는 너무나 컸다"며 실패를 인정했고 이를 거울삼아 기업 고객이 즉시 체감할 수 있는 실용적인 AI(Watsonx)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선회했다. 실패의 잿더미 속에서 반등 기회를 찾을 수 있었던 것 역시 실패의 경험을 자산으로 축적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할 연구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연구성과는 실적으로 이어졌다. IBM은 2023년 6월 이후 생성형 AI 사업에서만 60억달러(약 8조원)의 수주를 기록했다. IBM의 연 매출 630억달러 중 상당수를 차지한 것이다. AI 분야 실적 호조는 1분기에도 이어져 약 10억달러(약 1조4000억원) 이상의 추가 수주를 확보했다. 연구소에서 확보한 기술이 AI컨설팅 분야로 연계된다는 것이 확인됐다.
연구자가 행정부로 진출하는 경사도 있었다. 다리오 질 왓슨연구소 수석부사장은 최근 미 에너지부의 과학담당 차관으로 영전했다. 향후 트럼프 정부의 과학분야 정책에 핵심적인 역할이 예상된다.
◆AI를 넘어 양자로= 왓슨연구소는 AI와 함께 당장 큰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 양자컴퓨터라는 담대한 도전에 나서고 있다. 양자가 IBM의 미래인 셈이다. IBM 양자 부문을 총괄하는 제이 감베타 부사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초창기 양자컴퓨터팀은 미친 짓을 할 공간과 보호가 필요했다"며 "언제나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둬'라고 말한 것은 아르빈드였다"고 회상했다.
IBM의 부활은 한국의 기업 연구소에 시사점을 던진다. 단기 성과에 대한 압박,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경직된 문화 속에서 미래를 위한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고 있지는 않은가. 영광의 순간에도, 추락의 순간에도 묵묵히 다음 시대를 준비하는 연구소가 있었기에 IBM의 오늘은 존재한다. '빅 블루'라는 코끼리는 수십 년 만에 가장 민첩하게 춤추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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