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무릎을 꿇어야 학교를 지어주는 나라가 있다.
지체장애 학생을 위한 서울 성동구 성진학교 설립 과정에서 부모들은 "생존권"이라며 눈물로 호소하다 무릎을 꿇었다. 특수학교 설립 계획안이 확정된 순간까지 걸린 시간만 7년. 교육은 정치적 협상의 대상이 아님에도 행정권을 쥐고 있던 곳들은 "주민 목소리를 들어보자"라며 설립안을 뭉개왔다.
2025년 대한민국의 모습인데 7~8년 전에도 어디선가 본 것 같다. 2017년 서울 강서구 서진학교 설립 주민설명회에서는 장애 학생 부모들과 특수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마주 보고 무릎 꿇는 기가 막힌 상황이 연출됐다.
최근에야 일단락된 성진학교 설립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불과 석 달 전 진행한 설명회에서 일부 주민들은 학교 설립에 반대하며 특수학교를 아파트 밀집 지역에 지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성동구가 명품 동네가 된 만큼 명품 학교를 지어야 한다"는 한 지역민의 논리는 달라진 게 없는 대한민국을 그대로 보여준다.
부모들의 '무릎 호소'가 반복되는 이유는 특수학교 설립이 주민 반대, 정치적 이해 관계에 쉽게 휘둘릴 수밖에 없는 구조에 있다. 현행법상 대규모 개발 사업을 할 땐 반드시 학교 용지를 확보해야 하는데, 일반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만 대상이라 특수학교는 빠져 있다. 의무 대상이 아닌 탓에 지을 땅을 찾는 단계부터 난항이고 사업은 몇 년이고 지연되는 셈이다.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국의 접근 방식은 우리와 큰 차이를 보인다. 유엔(UN) 장애인권리협약에는 '장애인은 자신이 사는 지역사회에서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양질의 통합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돼 있다. 이 협약에 따라 유럽 국가들은 특수학교를 줄이거나 폐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노르웨이와 이탈리아는 이미 특수학교가 없고 포르투갈은 2018년부터 특수학교를 통합교육지원센터로 전환 중이라고 한다.
우리는 어떠한가. '분리가 배려'라는 접근 방식으로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 간에는 굵은 경계선이 있다. 입시 위주의 교육 시스템상 2차 피해를 우려해 되레 장애학생 부모가 분리를 원하는 경우도 많은 게 현실이다.
분리가 배려라면 시설이라도 많이 지어줘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다. 교육부 통계를 살펴보니 서울 25개 자치구 중 8곳에 특수학교가 없다. 반면 학령인구 감소에도 특수교육대상자 선정 학생은 매년 최대치를 찍고 있다. 올해 전국 특수교육대상 학생은 12만명을 넘어섰는데, 4명 중 1명만 특수학교에 재학 중이다.
통합교육이 현실에서 불가능하다면 대안이라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지역 반대가 있어도 특수학교를 지을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거나 특수학교 내 주민 상생 시설을 만들어 지역이 함께 관리하는 시스템을 세우는 게 방법일 수 있다.
특수학교가 없는 자치구에 학교를 새로 지어 수요를 분산하고 기존 학교 내 학급을 확대하는 방안도 고민해 볼 만하다. 자치구별 특수학교 설립은 10여년 전부터 교육감들이 들고나온 선거 공약이었던 만큼 실효성이 보장된 해결책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인식 변화다. 특수학교는 외진 곳에 짓는 시설이 아니다. 중랑구 동진학교는 12년 동안 부지를 8번이나 옮기면서 부모들의 애를 태우다 개교가 10년이나 늦어졌다. 숨기려고 하면 부모들은 어디선가에서 또다시 무릎 꿇을 수밖에 없다. 공존이나 상생도 서로 눈앞에 있어야 쉽고 빨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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