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유통의 전공자로서 잊을 만하면 듣는 얘기가 있다. '우리나라 농산물 유통은 그렇게 많은 예산을 투입해 매년 개선한다고 하면서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반은 틀리고 반은 맞는 말이다. 비록 일반 국민에게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우리나라 농산물 유통은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민의 기대치에 못 미치는 부분이 여전히 많다는 점도 사실이다.
우리나라 농산물 유통은 꾸준하게 발전하고 있다. 일례로 우리나라 최초의 공영도매시장인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이 개장한 1985년 이후 전국에 32개 농산물 공영도매시장이 도매유통을 담당하고 있다. 도매시장을 경유하지 않는 유통경로 또한 크게 늘어나 생산자와 소비자는 유통경로의 선택권이 다양해졌다. 특히 코로나19를 계기로 비대면 온라인 유통의 비중이 폭발적으로 확대됐고, 2023년 11월에는 온라인 공영도매시장인 농수산물 온라인도매시장(KAFB2B)이 개장해 거래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유통 효율성도 크게 개선됐다. 일각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농산물 유통비용이 소비자 가격의 절반에 육박한다고 비판하지만 사실은 선별과 소분, 포장, 가공 등 이전에 없던 유통 서비스가 추가되고도 유통비용이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그럼에도 농산물 유통은 여전히 개선할 부분이 많다. 거래비용이 '0'이 되는 '슈퍼플루이드(superfluid)'를 꿈꾸는 비농업권 유통에 비해 우리나라 농산물 유통은 여전히 고민하고 고쳐나갈 것이 많다.
최근 관계 부처 합동으로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방안이 발표됐다. 새 정부 들어 발표된 첫 농산물 유통 대책이다. 정부는 농산물 유통구조를 디지털 기반으로 혁신하고, 도매시장의 경쟁을 촉진하고 공공성을 제고하며, 소비자의 합리적인 선택을 지원하고, 안정적인 농산물의 생산 및 유통 기반을 구축하는 것을 주요 정책 전략으로 설정했다. 특히 눈이 가는 부분이 도매시장의 경쟁을 촉진하고 공공성을 높이겠다는 정책이다. 앞서 얘기했던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지적을 받는 공영도매시장을 작심하고 개선하겠다는 세부 정책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도매시장법인의 지정취소를 의무화하고 신규 법인의 공모를 통해 '경쟁에서 뒤처진 도매시장법인은 아예 퇴출시키겠다'는 정책은 공영도매시장 개장 이후 40여년 동안 경쟁의 무풍지대에서 안주하던 도매시장법인에는 상당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나아가 도매시장법인이 농민의 출하가격을 보전하도록 하고 공익기금을 조성하게 하는 등 공공성을 강화하도록 해 그동안 도매시장으로 들어오는 농산물의 거래를 중개하면서 수수료를 받던 도매시장법인의 혁신을 선택이 아닌 필수 사항으로 만들 것으로 보인다.
도매시장의 또 다른 유통주체인 중도매인과 도매시장 자체에 대한 혁신도 강하게 요구되고 있다. 공영도매시장의 울타리 안에서 경매 참여 등을 통해 비교적 쉽게 농산물을 유통하는 중도매인 또한 규모화 및 전문화가 필수 사항이 됐다. 거래 규모나 경쟁력이 떨어지는 도매시장은 아예 물류 등을 중심으로 전면적인 기능 전환을 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폐장의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
농산물 유통산업이라는 커다란 가마솥의 물이 이제 끓기 시작하고 있다. 정부는 앞으로 장작을 더 넣거나 아예 솥을 바꿔버릴 각오를 보이고 있다. 유통 주체와 도매시장 개설자의 차원이 다른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성훈 충남대 농업경제학과 교수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