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무법 국가는 어디인가

조지아 사태 美 외교 자책골 지적
자유국가 이미지 실추 정책 멈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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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자동차 회사인 제너럴모터스(GM)가 멕시코에 공장을 짓던 중 갑자기 멕시코 정부 요원들이 들이닥쳐 그곳에서 일하던 수백 명의 미국인을 불법 체류자라고 주장하며 체포했다. 심지어 단순 체포가 아니라 족쇄를 채워 끔찍한 환경 속에 감금했다. 그 후 멕시코 정부는 실수라며 미국인들을 귀국시켰지만 출국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족쇄를 채워 두었다. 멕시코 대통령은 지금까지도 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하지 않고 있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은가. 이는 실제 사건이 아니라 이달 초 벌어졌던 조지아 사태를 빗대어 재구성한 글이다. 지난 19일 온라인 뉴스레터 발행 플랫폼 서브스택(substack)에 올려진 이 글의 작성자는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다.

크루그먼 교수는 "이건 GM 공장이 아니라 한국 자동차 회사 현대가 건설 중이던 배터리 공장"이라며 "사건이 벌어진 장소도 멕시코가 아니라 미국, 정확하게는 조지아주였다"고 설명했다.


만약 이 사건이 미국 근로자를 대상으로 벌어진 일이라면 어땠을까. 크루그먼 교수의 말처럼 "아마 분노의 물결이 일고, 보복 조치 요구가 빗발쳤을 것"이다. 심지어 멕시코를 침공하자는 목소리까지 나왔을지도 모른다. 또 미국 기업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기업이 멕시코에 대한 투자 계획을 일제히 재검토했을 것이다.


그의 말처럼 조지아 사태는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오죽했으면 "노동자들이 사슬에 묶여 끌려 나오는 모습이 18세기와 19세기에 주인에 의해 끌려 나온 아프리카 노예들의 모습과 비슷했다"고 저명한 국제정치학자인 대니얼 드레즈너 미 터프츠대 교수가 꼬집었겠는가 말이다. 그러면서 드레즈너 교수는 지난 17일 '외교 정책의 타격은 계속되고 있다(The Foreign Policy Hits Just Keep On Coming)' 제목의 글에서 "페르시아만 국가들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부 전선 상황 모두 이달 트럼프 행정부의 가장 큰 외교 정책 실수, 즉 한국을 상대로 한 대규모 자책골만큼 심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사례를 보자. 최근 ABC방송의 심야 코미디 토크쇼 '지미 키멀 쇼'가 무기한 중단됐던 사건이 있었다. 진행자인 지미 키멀이 보수주의 활동가 찰리 커크의 죽음과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강성 지지층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을 비판한 탓이다.


지미 키멀 쇼를 폐지한 것은 ABC방송의 모회사인 디즈니가 대규모 합병을 앞두고 미국 정부의 눈치를 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디즈니는 현재 대규모 합병을 추진하고 있는데, 연방통신위원회(FCC)의 승인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논란 끝에 방송이 재개된다지만 전국 방송은 여전히 미지수다.


앞서 지난 7월에도 CBS 방송의 심야 시청률 1위 토크쇼 '더 레이트 쇼 위드 스티븐 콜베어'가 돌연 폐지됐다. 경제전문매체 MSNBC 정치 평론가 매슈 다우드도 방송에서 커크와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는 말을 했다가 하루 만에 쫓겨났다.


혹자는 이러한 사건들이 덴마크 코펜하겐대 교수인 미켈 볼트 라스무센이 자신의 책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에서 쓴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파시스트라는 점을 방증한다고 말한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파시스트냐 아니냐를 두고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사안이다. 다만, 모든 사례가 자유와 민주주의를 대표했던 미국의 이미지를 망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크루그먼 교수는 말한다. "외국인들이 언제든 정부 소속이라고 주장하는 복면 폭도들에게 납치당해 감금될 수 있는 나라야말로 진짜 '막장 국가(shithole country)'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고. 지금 트럼프 정권은 동맹국은 물론 본인을 비판하는 자국 언론 또한 언제든 탄압할 수 있는 '무법 국가' 미국을 만들고 있다.





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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