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과 생산성이 갈랐다'…中기업 성장속도, 韓 6배(종합)

포브스 2000대 기업 변화 분석
대한상의 '韓·美·中 기업 보고서'
韓기업 매출 10년간 15% 성장
中은 95% 급증, 美도 63% 늘어
"中 기업생태계가 신흥강자 배출 힘 키워"
첨단기술·IT 기업이 성장 주도
대한상의 "기업생태계 강화해야"

최근 10년간 중국 기업들의 성장속도가 우리나라보다 6배 이상 빠르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한중 기업들의 매출액을 합산해 성장세로 평가한 건데, 혁신과 생산성 추진속도가 양국 기업의 격차를 벌렸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또 뒤처진 성장속도를 만회하기 위해선 규제를 사전보단 사후에 적용하고 기업 규모 보다는 산업별로 제한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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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상공회의소가 23일 내놓은 '글로벌 2000대 기업의 변화로 본 한미중(韓美中) 기업삼국지'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2000대 기업 중 우리 기업의 합산매출액은 최근 10년간 1조5000억달러(2015년)에서 1조7000억달러(올해)로 15% 성장했다. 하지만 중국은 같은 기간 4조달러에서 7조8000억달러로 95% 급증하면서 우리나라보다 성장속도가 6.3배 더 빨랐다. 미국도 11조9000억달러에서 19조5000억달러로 63% 증가하면서 우리와의 격차를 벌렸다. 이 보고서는 대한상의 'K-성장 시리즈 1편'으로 미국 유력경제지 '포브스' 통계를 분석해 만들었다.

포브스 선정 세계 2000대 기업에서도 3국의 숫자는 큰 차이를 보였다. 2000대 기업 가운데 중국 기업 숫자는 2015년 180개에서 올해는 275개로 늘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10년 전 66개에서 오히려 62개로 줄었다. 미국은 같은 기간 575개에서 612개로 늘었다. 중국에서 '신흥 강자'들이 대거 출현하면서 세계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포브스의 '글로벌 2000'은 시장 영향력, 재무 건전성, 수익성이 좋은 '리딩 기업'을 모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그 나라 기업생태계가 가진 힘을 나타내는 지표로 본다.


미국에선 엔비디아(매출 성장률 2787%), 유나이티드헬스(314%), 마이크로소프트(281%), CVS헬스(267%) 등 첨단산업과 헬스케어 기업이 성장을 주도했다. 스톤X(금융상품 중개, 매출액 1083억달러), 테슬라(전기차, 957억달러), 우버(차량공유, 439억달러) 등 새로운 분야의 기업들이 신규 진입하며 기업생태계 성장속도를 끌어올렸다. 여기에 실리콘밸리·뉴욕·보스턴 등 세계적인 창업생태계를 바탕으로 에어비앤비(숙박공유), 도어대시(음식배달), 블록(모바일결제) 등 IT기업들이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새로운 성장을 만들어냈다.

중국은 알리바바(이커머스, 1,188%), BYD(전기차, 1,098%), 텐센트홀딩스(온라인미디어ㆍ게임, 671%), BOE테크놀로지(디스플레이, 393%) 등 첨단기술·IT 분야 기업들이 주로 성장을 이끌었다. 또 파워차이나(에너지, 849억달러), 샤오미(전자제품, 509억달러), 디디글로벌(차량공유, 286억달러), 디지털차이나그룹(IT서비스, 181억달러) 등 에너지, 제조업, IT를 포함한 다양한 산업군에서 글로벌 2000으로 진입했다.


대한상의는 "중국의 기업생태계가 신흥 강자를 배출해서 힘을 키웠다면, 미국은 인공지능(AI)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IT)을 활용한 빠른 탈바꿈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미·중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SK하이닉스(215%), KB금융그룹(162%), 하나금융그룹(106%), LG화학(67%) 등 제조업과 금융업이 성장을 이끌었고 새롭게 등재된 기업은 주로 금융기업들(삼성증권, 카카오뱅크, 키움증권, iM금융그룹, 미래에셋금융그룹 등)이었다. 제조와 기술 등 국가의 핵심경쟁력을 형성하는 산업에선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않은 것이다.


대한상의는 보고서에서 우리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선 기업생태계를 강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현재 우리 기업생태계는 지원은 줄어든 반면, 규제는 늘어나는 '역진적 구조'라고 지적했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은 이달 초 '기업성장포럼 출범식'에서 "기업 사이즈가 크면 클수록 규제가 커지니 기업 입장에서는 성장해야 한다는 생각이 거의 없어진다"며 "대한민국 성장이 정체되고 민간의 활력이 떨어지는 근본적인 이유"라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김영주 부산대 교수는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이 되면 규제가 94개로 늘고 중견에서 대기업을 넘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 되면 343개까지 증가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중국 오성홍기(왼쪽)와 태극기.

중국 오성홍기(왼쪽)와 태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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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회장은 기업이 성장할수록 늘어나는 규제를 제외하기 위해선 '메가 샌드박스'를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역에 '규제 제로 실험장'을 만들어 기업들이 AI 등 첨단산업에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자는 취지다.


이외에도 대한상의는 가능성 있는 프로젝트를 선별해서 기업 지원이 이뤄져야 하고 규제는 사전보단 사후에 처벌하는 방향으로, 규모별보단 산업별로 제한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반도체, AI 등과 같이 대규모 투자와 규모의 경제가 필요한 첨단산업군에 한해서라도 우선적으로 차등규제를 제외해 산업경쟁력을 지켜야 한다"며 이를 위해 '첨단전략산업법'을 개정해 전략기술에 대해 규제 예외 조항을 삽입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고 제안했다.


전문가들은 중국 기업들의 빠른 성장에는 정부 역할이 큰 만큼 우리 정부도 기업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박찬훈 한국기계연구원 AI로봇연구소장은 "중국 기업들은 정부가 연구개발을 전제로 구매를 보장하고 세금 혜택까지 더해주면서 기업이 판매 경험을 쌓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완전 자본주의 구조라 역량이 없으면 곧바로 도태될 수밖에 없다"며 "구조적으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종명 대한상의 산업혁신본부장은 "한 해에 중소기업에서 중견으로 올라가는 비중이 0.04%, 중견에서 대기업이 되는 비중이 1~2% 정도에 불과하다"며 "다양한 업종에서 무서운 신진 기업들이 배출되도록 정책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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