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금리를 결정하라고 하면 개인적으론 금융안정에 더 초점을 두고 싶다. 올해 한 번 정도 추가 인하 의견 내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데, 10월과 오는 11월 중 시점을 고민하고 있다."
황건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은 23일 '한국은행의 역할과 정책 환경변화에의 대응'을 주제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가계부채 상승에 따른 금융 불균형을 우려한다면 금리 동결에 무게가 실린다. 황 위원은 "최근 서울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집값이 다시 들썩이면서, 이런 분위기가 확산해 가계부채가 증가하게 되는 상황을 가장 우려한다"며 "추석 연휴 전후 상황이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추가 인하는 한 차례 정도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남은 10월과 오는 11월 통화정책방향 결정 회의 중 시점을 언제로 할지는 고민 중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금리 인하가 집값이나 가계부채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는 게 이번 한은 (통화신용정책보고서) 분석을 통해서도 나타났다"며 "향후에도 가계부채, 특히 가계부채의 추세를 가장 면밀히 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기 측면에선 건설 부문의 추이를 집중적으로 살필 것이란 방침이다. 그는 "(앞선 결정에선) 수출·소비 등이 예상보다는 좋았으나 이를 압도적으로 뒤엎는 게 건설 부문이었다"며 "최근 공사 중단과 기후 등 요인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보고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 위원은 "정책 결정 시 '지속 가능하지 않은 것은 언젠가는 멈춘다'는 말을 새겨야 한다"며 "우리나라에선 특히 가계부채 문제와 연계한 부동산 문제에서 이 말을 유념해 문제가 터졌을 때 어떤 충격이 올 수 있는지 미리 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미 금리차는 점점 줄여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달 미국이 정책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하면서 한미 간 금리 차는 1.75%포인트(상단 기준)로 좁혀졌으나 여전히 큰 상황이다. 황 위원은 "다른 금통위원에 비해서도 내외 금리차를 민감하게 본다"며 "미국 정책금리 인하의 경우 속도와 폭이 시장 예상 수준과 유사하게 결정될 것으로 예상한다. (금리차를) 점점 줄여나갔으면 좋겠다는 시각"이라고 말했다.
최근 대미 투자와 함께 부각된 한미 간 통화스와프와 관련해선 '고도의 정치적 영역'이라고 평가했다. 통화스와프는 자국 화폐를 상대국에 맡긴 후 미리 정한 환율대로 상대국 통화로 맞바꿀 수 있도록 하는 협정이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통화스와프 없이 미국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3500억달러를 인출해 전액 현금으로 투자한다면 한국은 1997년 금융위기와 같은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우려한 바 있다.
황 위원은 "통화스와프는 외환거래에서 안전판이므로 다양하게 하면 할수록 좋다고 본다. 과거에도 한미 통화스와프가 외환시장에 미치는 효과는 확실했다"면서도 "통화스와프를 맺는 건 일종의 협상인데, 외국과의 중요한 협상에선 전략을 상대방에게 알려줄 수 없어 어려움이 있다"고 짚었다.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지난해 말 기준 4156억달러 수준으로 4000억달러를 소폭 웃돈다. 이에 대해 황 위원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나 문제는 시장에서 달러를 사거나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을 발행해야 하는데, 외환시장 환율에 영향 미치는 등 파급 효과가 있어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에 육박한 현재 환율 레벨에 대해선 "과하다는 생각이 있으나, 레벨보다는 실제로 변동성을 더 크게 본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반영하는 달러지수(DXY)가 97 전후로 안정됐는데도 원·달러 환율이 여전히 1400원 언저리인 건 일부 금통위원이 걱정하고 있고 저도 마찬가지"라며 "이를 완화하기 위해 외환 당국에서 여러 가지를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다만 변동성 측면에서 보면 (급등락하던) 지난 4~5월보다 줄어든 상태라고 짚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과 관련해선 "전례 없던 민간의 화폐 창출 기능을 포함했단 점에서 민감한 분야"라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위원은 "스테이블코인과 관련한 우려 중 외화 유출과 환치기(제3자 취급)가 있는데, 관련 규제 있는 나라는 사실상 우리나라뿐이라고 할 정도로 다른 나라는 상당히 자유화돼 있다"며 "한국은 과거부터 달러가 모자라는 국가였으므로 외환관리는 엄격히 해왔고, 외국환관리법 규제가 점진적으로 완화하는 과정에서도 외환 유출과 관련해선 민감했다"고 강조했다. 일시에 완화하는 건 아직 우리나라 상황에 어렵다는 설명이다.
그는 "'국제화된 통화를 갖고 있지 않은 국가는 외환위기라는 원죄를 갖고 태어난다'는 말을 늘 염두에 둔다"며 "한은이 (규제를 갖춘) 은행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하자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짚었다.
정부가 추진 중인 금융감독체계 개편은 "공급자 측면에서보다 수요자 측면에서 고민했으면 한다"며 "감독 대상인 금융기관, 일반 소비자 입장이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 과정에서 한은은 거시건전성 정책 등에 대해 정부가 어떤 면에서 말하기 힘든 부분을 독립적이고 책임감 있게 주장해야 한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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