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지대계 '해결사' 맡겼더니…'옥상옥' 된 국교위[대학 대전환]⑧

올 5월 발표하겠다며 워크숍 3번 열었지만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 차일피일 연기
시안 발표도 못한 채 1기 활동 종료
3년간 의결한 30건 중 자체 발의 '0'건

국가교육위원회가 출범 4년 차를 맞았지만, 교육 정책의 '컨트롤타워'로서 사실상 기능을 상실했다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된다. 2022년 9월 출범 당시 교육 정책의 '백년지대계'를 설계하겠다던 취지는 온데간데없고 정쟁과 파행 속에서 '옥상옥' 논란만 키웠다. 3년간 아무런 결과물을 내놓지 못해 혈세를 낭비한다는 비판을 물론 최근 초대 위원장의 '매관매직' 의혹까지 더해지면서 국교위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고등교육의 핵심인 대학 관련 의제는 사실상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학령인구 감소로 지방대 붕괴, 대학원 정원 미달, 연구 경쟁력 약화 등 현안이 산적했음에도 국교위는 제 역할을 못했다. '제2기 국교위'가 닻을 올린 만큼 정권의 이념·성향을 넘어선 중립성·독립성을 확보하고, 위원들의 전문성과 역량, 정책 수립에 필요한 시간·예산 등 위원회의 모든 역량을 오로지 교육에만 쏟아부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

결국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 못내…"교육부의 해바라기, 박수부대, 하청기구로 전락했다"

국교위 안팎에서는 국교위의 모든 것을 혁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기 국교위에 참여한 정대화 상임위원은 퇴임을 하루 앞둔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난 3년간 국교위는 교육부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들러리, 박수부대, 하청기구, 대행 기구, 식물기관으로 전락했다"면서 "국교위 활동을 시작하며 꿈이 많았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반성했다.


특히, 이배용 전 국교위원장의 각종 의혹 등 국교위 위상이 추락한 것에 대해 "대한민국 교육의 위기를 해결하라고 국교위가 발족했는데 오히려 위기를 가중한 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국교위가 지난해 단 한 차례 열었던 워크숍을 올해 3차례나 열었던 이유는 1기 국교위의 핵심 과제인 '2026~2035년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을 일정에 맞춰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시안 발표를 차일피일 미루다 아무 결과물도 발표하지 못했다.

백년지대계 '해결사' 맡겼더니…'옥상옥' 된 국교위[대학 대전환]⑧ 원본보기 아이콘

2026~2035년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 개편안은 2032학년도 대입부터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국교위가 시안을 만들고 확정하면, 교육부와 교육청은 세부계획을 마련한다. '2024년 9월 시안 발표-2025년 3월 확정-2026년 1월 반영'이 당초 로드맵이었다. 그러나 국교위는 중장기 교육발전계획 시안 발표 일정을 지난해 9월에서 올 1월, 5월로 계속 미뤘다. 결국 2026년부터 2035년까지 적용하려고 했던 일정이 불가능해지면서 '2027~2036년 계획'으로 바뀌었다.


공은 2기 국교위로 넘어갔다. 새 정부에서 출범한 2기 국교위는 중장기 교육발전계획 시안 발표를 내년 3월께로 잡고 있다. 차정인 신임 국교위원장은 "2027년부터 2036년까지 적용하게 될 교육 계획인 만큼 매우 중요한 '십년대계'"라면서 "속도는 내지만 졸속으로 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내부 갈등·정파성에 발목 잡혀

국교위는 그동안 정권의 눈치를 살피느라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지적을 지속적으로 받아왔다. 내부에서는 '거수기'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국교위는 대통령 소송 행정위원회로, 위원 총 21명 중 3분의 2인 14명이 대통령과 여야 추천으로 구성됐다. 학제·교원정책·대학입학정책·학급당 적정 학생 수 등 중장기 교육 제도 및 여건 개선 등에 관한 국가교육발전계획 수립에 관한 사항을 책임진다. 이를 위해 본래는 정권 성향과 관계없이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중장기 교육정책을 수립하도록 출범했지만, 위원들 간 정치색이 뚜렷하게 대비돼 자칫 정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가 초반부터 제기됐다. 결국 대입제도 난이도 및 유형, 수능 이원화 관련 논의, 고교 내신평가 방식, 고교 평준화 유지 여부 등 민감한 사안마다 진영 갈등이 격화돼 논의는 번번이 파행으로 치달았다.


이 때문에 자체적으로 의제를 설정하기보다는 교육부가 올린 안건만 처리해왔다. 국교위가 3년간 의결한 안건은 총 30건이지만, 이 가운데 자체 발의한 사안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정 상임위원은 "주요 안건은 모두 교육부가 제안한 안건이었고, 위원회가 스스로 안건을 만들어 결정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밝혔다.


"중립적 위원장 임기 5년 이상 보장돼야"

교육계는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닻을 올린 제2기 국교위가 본연의 기능을 되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무엇보다 정쟁에 휘둘리지 않는 중립성과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사립대 총장은 "위원장은 현명하게 정파적 이견을 조율해야 하며, 위원장의 임기가 5년 이상 보장될 수 있도록 해 안정적으로 위원회를 이끌어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부와 국교위의 중복 업무를 정리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국교위와 교육부 모두 책임 회피에만 열중하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대학의 자율 권한 보장과 재정 확충에 집중하고, 국교위는 사회적 합의 기반 중장기 계획을 마련하는 데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차 위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국교위 정상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는 "위원들 간 파당적 견해 대립이 있다면 위원들과 심금을 터놓고 대화하고, 대입제도뿐만 아니라 유보통합·영유아 사교육·교권 보호·고교학점제 등 주요 교육 현안에 대해, 직업교육·특수교육·평생교육에 대해, 국가교육계획의 컨트롤 타워로서 거시적이며 전문적인 논의를 하겠다"고 말했다. 차 위원장은 취임 100일째를 맞는 오는 12월23일께 국교위 혁신 내용을 발표할 계획이다.





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