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신뢰는 붕괴됐습니다. 세계는 미국 없이도 무역을 이어가려고 할 겁니다. 트럼프의 보호무역은 세계화의 중단이나 종말이 아니라, 세계 통상 질서를 재편하는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해롤드 제임스 프린스턴대 역사학 및 공공·국제정책대학원 교수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무역 정책을 주제로 아시아경제와 화상으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뉴욕=권해영 특파원
원본보기 아이콘세계 경제사와 국제 무역·금융 질서 연구의 권위자인 해럴드 제임스 프린스턴대 역사학 및 공공·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최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역정책을 두고 이같이 평가했다.
제임스 교수는 "미국 내에서도 관세의 폐해가 재앙적이라는 판단이 곧 내려질 것"이라며 "과거보다 훨씬 더 큰 비용을 초래하는 정책은 결국 막다른 길에 다다를 수밖에 없고, 근본적 재검토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설사 미국이 자유무역으로 복귀하더라도 정치적 상처는 깊게 남고, 국제 사회에서의 신뢰 회복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미국 관세의 역사적 맥락을 짚으며 "19세기에는 고관세 속에서도 산업화를 달성했고, 1930년대에는 관세보다 금융위기가 경제를 무너뜨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날은 희토류 등 핵심 자원 의존도가 높아 보호무역은 과거보다 훨씬 취약한 기반 위에서 진행된다"고 경고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이 오히려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의 연대를 촉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미국이 스스로 물러나면서 다른 나라들은 무역의 중요성을 더욱 절실히 인식하고 있다"며 "미국을 빼고 새로운 무역 질서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몇 개의 거대 블록이 아니라 다수 국가가 협력하며 개방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제임스 교수와의 일문일답.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호무역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트럼프 1기에도 보호무역은 분명 존재했다. 철강·알루미늄 관세 조치가 대표적이다. 후임인 조 바이든 행정부도 이 조치를 철회하지 않아 일종의 초당적 합의처럼 비쳤다. 그러나 트럼프 2기 들어 4월2일 '해방의 날'에 발표된 관세는 예상보다 훨씬 광범위했다. 늦여름에는 인도·스위스·브라질 등에 초고율 관세가 부과됐고, 관세가 외교정책의 수단으로까지 쓰이고 있다. 세계는 더 높은 무역장벽과 불확실성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미국 경제에는 어떤 영향이 예상되나.
▲물가 상승과 공급 불안이 불가피하다. 실업자가 늘고 경기는 위축되겠지만, 동시에 물가도 오를 것이다. 특히 불법 이민자 추방과 대규모 구금 조치는 농업·건설업·서비스업 비용을 끌어올릴 전망이다.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경기 위축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를 내려야 하지만, 물가 상승 때문에 금리를 올려야 하는 딜레마에 직면할 것이다.
-1930년대 2만여개 수입품에 평균 59% 관세를 부과한 스무트-홀리 관세법은 대공황을 악화시켰다. 트럼프의 보호무역은 세계 경제에 어떤 파급 효과를 낳을까.
▲관세만으로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1930년대와 지금은 다르다. 당시 교역은 원자재·식량·공산품의 단순 교환에 가까웠다. 스무트-홀리 관세법은 일본의 실크, 스위스의 시계 산업에 즉각적 충격을 줬지만, 대공황을 심화시킨 주된 요인은 관세가 아니라 금융위기였다. 오늘날 역시 무역 긴장 자체보다 금융 불안과 결합할 때 더 큰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한 미국의 상호관세에 대해 법원이 위법 결정을 내렸는데 향후 판결 전망은.
▲관세는 본질적으로 세금이므로 의회의 권한 아래 있다. 그러나 현재는 대통령의 행정명령만으로 시행하고 있다. 대법원에 트럼프 지명 대법관이 많긴 하지만 판결에 따라 의회가 무역정책 권한을 되찾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트럼프는 '플랜 B'로 불리는 다른 법적 수단도 다수 보유하고 있다.
▲그렇다. 대통령은 국가안보 조항 등 다른 법적 근거로 관세를 유지할 수 있다. 다만 그 무렵이면 관세 비용이 본격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지금까지는 소매업체들이 관세 발효 전에 물량을 미리 확보해 충격을 완화했다. 크리스마스 장식·선물·장난감 같은 중국산 제품들을 이미 수입했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상황이 달라져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
-트럼프 이후 미국은 자유무역으로 복귀할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미국은 스무트-홀리 관세법의 실패를 빠르게 학습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행정부는 1934년 (관세 인하 협상을 위한) 상호무역협정법을 제정해 개방 노선으로 전환했다. 이번에도 관세의 폐해가 재앙적이라는 인식이 빠르게 확산하며 자유무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트럼프의 보호무역과 세계무역기구(WTO) 약화 속에서 중장기적으로 세계 무역질서는 어떻게 재편될까.
▲트럼프 1기부터 WTO 분쟁 해결 기능이 약화했고, 2기 들어 그 흐름은 더 심해졌다. 그럼에도 세계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미국 없이 새로운 무역 질서를 재건하려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최근 싱가포르와 아랍에미리트(UAE)가 주도하는 '미래 투자 및 무역 파트너십(FIT-P)'에 모로코, 르완다, 말레이시아, 코스타리카, 파나마, 파라과이, 노르웨이 등이 합류한다. 유럽연합(EU) 역시 아시아 주요국과의 협력을 확대할 것이다. 미국이 스스로 물러나자, 다른 나라들은 무역의 중요성을 오히려 더 절실히 인식하고 있다.
-새로운 무역 블록이 형성될까.
▲그렇다. 다만 1930년대처럼 몇 개의 거대 블록으로 쪼개지는 방식은 아닐 것이다. 중국·인도·유럽 등을 중심으로 한 단일 블록이라기보다, 다수 국가가 유연하게 협력하며 개방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재편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 희망적인 국면이기도 하다. 미국은 이 사안에서 세계 경제를 마비시킬 만큼 충분히 크지 않다.
-경제사학자로서 트럼프의 보호무역을 세계화 맥락에서 어떻게 평가하고 전망하나.
▲분명한 전환점이다. 특히 미국 정치에 깊은 상처를 남길 것이고, 혼란의 후유증을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영국도 브렉시트 이후 장기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그래도 세계는 전진할 것이다. 각국은 단일 공급처 의존을 줄이기 위해 리쇼어링과 다변화를 추진하겠지만, 완전한 자급은 불가능하다. 무역과 국제분업에 대한 의존은 지속되고, 기술 발달로 서비스의 국경 간 교환은 더욱 빨라질 것이다. 물적 재화 교역은 줄어들 수 있지만, 지식·서비스 교역은 오히려 확대될 전망이다.
해럴드 제임스 교수는
해럴드 제임스 교수는 현대 유럽사와 국제경제사, 금융사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역사학자다. 그는 독일 현대사, 금융위기, 세계화의 전개와 한계 등을 폭넓게 연구해 왔으며, 국제통화기금(IMF)의 공식 역사학자를 역임한 바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1986년부터 프린스턴대에 재직하고 있다. 현재 프린스턴대 역사학과와 공공·국제정책대학원 교수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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