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
■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 출연 : 이현우 기자
네팔에서 정치적 대변혁이 일어났다. 샤르마 올리 전 총리가 이끌던 네팔 공산당 정권이 갑작스럽게 붕괴되면서 임시정부가 수립됐고, 내년 3월 총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사태의 핵심에는 중국의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사업과 이로 인한 급격한 국가부채 증가가 자리하고 있어 주목된다.
9월 3일 중국 전승절 참석 후 불과 6일 만에 정권 붕괴네팔 정권 붕괴의 속도는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샤르마 올리 전 총리는 9월 3일 중국의 전승절 기념 행사에 참석했지만, 돌아온 지 이틀 만인 9월 5일부터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시작됐고, 9월 9일 정권이 완전히 붕괴됐다. 총리는 사임하고 내각 구성원들은 국외로 탈출하는 등 정부 기능이 마비된 상황에서 임시정부가 급하게 구성됐다.
이처럼 급작스러운 정권 붕괴의 배경에는 중국과의 일대일로 사업으로 인한 경제적 압박과 이에 따른 민생고가 있었다. 시위를 주도한 세력들은 강한 반중 정서를 보였으며, 이는 지난 몇 년간 누적된 일대일로 사업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결과로 분석된다.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은 개발도상국들에게 양날의 검과 같은 존재다. 낙후된 국가들이 철도, 공항, 도로 등 기초 인프라 투자를 한꺼번에 받을 수 있어 산업 발전의 기회를 제공하지만, 모든 비용이 결국 국가부채로 돌아와 감당하기 어려운 부채에 시달릴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네팔과 중국은 2017년 일대일로 사업 양해각서를 체결했지만, 7년간 지지부진한 상태를 유지하다가 작년부터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이는 네팔 정계 내부의 심각한 이견 때문이었다. 원래 집권 중이던 네팔공산당은 중국과의 친밀한 관계를 바탕으로 일대일로 사업을 적극 찬성했던 반면, 중도 좌파 성향의 네팔회의당은 인도와 미국 등 서방과의 관계와 균형을 맞춰야한다며 신중한 접근을 요구했다.
일대일로 사업 추진 이후 정부부채가 급증한 것도 위기의 단초가 됐다. 2015년까지 국내총생산(GDP) 대비 20% 수준이었던 정부 부채 비율이 올해 44%까지 치솟았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부채가 2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이는 공항과 철도 건설 등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가 연이어 추진되면서 나타난 결과다. 네팔 시민들은 일대일로 사업이 집권층인 공산당 당원들만 부자로 만들고 서민들은 더욱 가난하게 만든다는 불만을 제기했다. 이러한 누적된 불만이 결국 정권 붕괴로 이어졌다.
네팔 임시정부는 내년 3월 총선 실시를 발표했다. 현재 네팔 사회에 반중 정서가 확산된 상황에서 기존 네팔 공산당과 같은 친중 성향 정당이 집권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오히려 인도와 미국과의 관계 강화를 추구하는 정부가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네팔 공산당 정권을 전혀 보호하지 못한 상황도 향후 중국-네팔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권 붕괴 속도가 워낙 빨라 중국이 개입할 시간도 없었고, 함부로 개입했다가는 인도와 미국의 대응을 불러올 수 있어 중국도 조심스러운 입장이었다. 이에 따라 향후 네팔에서는 기존 일대일로 프로젝트들이 상당 부분 지연되거나 취소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네팔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감안할 때, 이는 중국의 남아시아 전략에 큰 타격이 될 전망이다.
네팔의 지정학적 위치는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서 매우 중요하다. 일대일로의 핵심인 육상 실크로드는 중국과 유럽을 연결하는 것이 목표인데, 기존 계획된 루트들이 연이어 막히면서 네팔을 경유하는 우회로가 주목받았기 때문이다. 애초 중국은 신장위구르에서 아프가니스탄과 이란을 거쳐 유럽으로 향하는 북부 루트를 추진했지만, 탈레반 정권 재등장으로 공사가 어려워졌다. 두 번째 우회로였던 티베트-카슈미르-파키스탄-이란 루트는 중국과 인도 간 카슈미르 분쟁으로 막혔다.
이에 따라 세 번째 우회로인 쓰촨성-티베트-네팔-인도-파키스탄 루트가 주목받았는데, 이 루트는 방글라데시를 통해 동남아시아와도 직접 연결되는 허브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네팔 정권 붕괴로 이마저도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네팔 사태가 다른 남아시아 국가들에 미치는 영향이다.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에서도 일대일로 반대 시위가 높은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네팔 정권 붕괴가 전 세계로 생중계되면서 이들 국가의 반정부 시위가 더욱 자극받고 있다.
만약 남아시아 국가들에서 친중 정권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진다면, 일대일로 사업은 한동안 큰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중국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틈을 미국과 인도가 바로 파고들고 있다. 인도는 2023년부터 일대일로와 유사한 '인도 중동 유럽 경제회랑(India-Middle East-Europe Economic Corridor)' 프로젝트를 시작했으며, 여기에는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유럽연합이 참여하고 있다. 남아시아 세력균형이 미국·인도 쪽으로 기울 경우, 중국은 이 지역에서 전략적 후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남아시아에서의 후퇴가 예상되는 중국은 핵심 영역인 동북아시아에서라도 우위를 점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미국과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 특히 대만 해협을 둘러싼 긴장을 높일 수 있다. 동북아시아 지역에는 북한이라는 변수가 있고, 한반도 정세도 복잡한 상황이다. 남아시아 지역에서의 충돌이 줄어드는 대신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의 군사적 도발이 심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중국과 인도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던 남아시아 지역에서 친중 정권들이 무너지고 일대일로 사업이 차질을 빚게 되면, 중국은 자연스럽게 동북아시아에서의 영향력 확대에 더욱 매진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 지역의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또한 일대일로 사업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중국의 경제외교 전략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이는 우리나라의 대중 경제협력 전략 수립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정부 차원의 면밀한 분석과 대응 전략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네팔의 작은 나라에서 시작된 정치적 변화가 중국의 거대한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흔들고, 나아가 아시아 전체의 지정학적 판도를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가 주는 교훈은 크다. 앞으로 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 정세 변화를 면밀히 주시하며, 우리나라의 국익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기회를 최대화하는 전략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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