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민의 딥테크]연구자가 창업해야 韓 경제도 달린다

안정된 직장인 출연연 소속 연구자들의 창업 열기 '후끈'
정부 투자 개발 기술 사업화·고용창출 효과 기대
한국형 유니콘 목표로 지속적 지원 필요

지난 9일 대전에서 열린 출연연 딥테크 기획창업 데모데이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 9일 대전에서 열린 출연연 딥테크 기획창업 데모데이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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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대전 충남대 캠퍼스에 있는 대전 팁스(TIPS·민간투자 주도형 기술창업 지원)타운에서는 '출연연 딥테크 기획창업 데모데이' 행사가 열렸다. 행사에 참가한 주인공들은 기술기반으로 딥테크 창업을 희망하는 정부 출연연 소속 연구자들이었다. 기자는 안정적 연구기반을 가진 이들이 왜 도전을 상징하는 창업을 위한 경연에 나선 걸까 하는 의문을 가졌지만, 행사를 마치고 생각을 바꿔야 했다. 이들의 진심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이날 연구가 아닌 창업이라는 새로운 '전장'에 나서는 과학자들은 실험복 대신 정장을 입고, 손에는 실험 장비 대신 마이크를 쥐고 차분히 사업계획을 소개했다. 연구자들은 허락된 발표 시간 5분 동안 수년간의 연구 성과와 기술의 시장성을 동시에 증명해야 했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긴장한 이도 눈에 띄었다.

이들에게 투자하거나 지원할 벤처캐피털과 액셀러레이터에 소속된 심사위원들의 예리한 눈초리는 창업 후보자들의 빈틈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규제 장벽은 어떻게 넘을 것인가?" "투자금이 바닥나면 어떤 대안을 갖고 있나?" 날카로운 질문이 이어질 때마다 발표자들은 당황한 듯하면서도 능숙하게 답변을 내놨다.


약 4시간에 걸친 경합이 끝난 후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한국핵융합연구원 소속 박사들이 의기투합한 '스페이스엑시온'이 대상을 차지했다. 초소형 위성용 이온 추진 시스템을 소개한 이들은 "우리 기술은 글로벌 경쟁사 대비 30% 이상 앞선다"고 설명하며 심사위원들의 눈도장을 제대로 받는 데 성공했다. '한국판 스페이스X'의 탄생을 위한 심장을 제공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통한 것이다.


지난해 이 자리에서 수상해 창업을 준비 중인 정영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박사는 "벌써 1년 전 일"이라며 웃어 보였지만, 창업을 결심하기까지 두려움이 컸다고 털어놨다. 그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의 딥테크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알게 되고 대회 우승까지 하면서 본격적인 창업의 길에 들어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 박사는 "논문 한 편은 학생의 진로를 열어주지만, 창업은 아예 일자리를 만들어낸다"며 연구자의 사명을 새롭게 정의했다.

지난해 열렸던 출연연 기획창업 데모데이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정도영 KIST 책임연구원(왼쪽)이 김영민 KIST 책임연구원과 자신의 창업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김 연구원 역시 창업을 계획 중이다. 백종민 테크 스페셜리스트.

지난해 열렸던 출연연 기획창업 데모데이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정도영 KIST 책임연구원(왼쪽)이 김영민 KIST 책임연구원과 자신의 창업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김 연구원 역시 창업을 계획 중이다. 백종민 테크 스페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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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연 현장에서 확인한 것은 '왜 안정된 직업을 가진 연구자가 창업에 나서야 하는가'라는 물음의 답이었다. 먼저 국가 예산으로 개발된 수많은 기술이 논문과 보고서로만 남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기술을 가장 잘 아는 연구자가 직접 창업에 나서는 순간, 사장될 뻔한 기술은 제품이 되고 서비스가 되며 미래 산업을 바꿀 씨앗이 된다.

둘째, 창업은 국가 경제의 성장 동력 요인이 된다. 창업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국가 전략기술을 산업으로 연결하는 출발점이다. 정 박사도 "창업을 통해 한 명, 두 명의 일자리를 만들면 그 뒤에 있는 가정까지 살린다"고 배웠다고 했다.


연구자 창업은 국가가 지원한 연구 성과가 산업으로 이어지는 가장 직접적인 길이며, 한국형 딥테크 유니콘을 향한 도전의 시작이다. 안정된 연구실을 벗어나 창업이라는 낯선 무대에 선 것은 개인의 선택을 넘어 한국 과학기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고 있었다.

도전을 가능하게 하려면 뒷받침도 필요하다. NST뿐 아니라 각 출연연이 세운 기술지주회사들도 창업자를 발굴하고 투자하고 있다. 무모해 보이는 도전에 잘 짜인 조력이 있다면 성공으로 바뀔 수 있다.


정부가 출연연에 연구비를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연구자가 '새장 속에 갇힌 새'가 되지 않고 훨훨 날 수 있도록 해주는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도전은 응원을 먹고 자라나기 때문이다.





백종민 테크 스페셜리스트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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