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그룹 계열 지마켓(G마켓·옥션)과 중국 알리바바그룹의 알리익스프레스가 동맹 체계를 구축하면서 이용자 수 1900만명에 육박하는 거대 e커머스 합작법인이 출범하게 됐다. 국내 유통시장에서 영향력이 큰 신세계그룹의 노하우와 알리바바의 막강한 자금력 및 IT 기술 인프라, 글로벌 네트워크 등이 합쳐지면서 e커머스 시장을 흔들 복병으로 떠올랐다. 업계에서는 이들 합작법인이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국내외 판로를 확장하고 영향력이 커질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이미 독주 체제를 굳힌 쿠팡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8일 지마켓과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의 동맹을 조건부로 승인한다고 밝혔다. 이들 회사가 신세계그룹과 중국 알리바바인터내셔널이 5대 5로 출자해 설립한 합작법인(JV) 그랜드오푸스홀딩이 지마켓과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 지분 100%를 보유하는 기업결합으로 두 회사가 합작법인의 자회사로 편입되는 방식으로 사업하게 된다.
공정위는 양사의 고객정보와 데이터 관리에 대한 자진시정 조치를 기반으로 이번 기업결합을 최종 승인했다.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소비자와 시장의 우려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견제 장치를 마련하면서 국내 판매자(셀러)와 상품이 글로벌 플랫폼의 인프라를 활용해 역직구(해외 직접판매) 시장에 진출하는 기회가 확대될 것으로 판단했다.
신세계와 알리바바는 JV 승인 직후 "20년 이상의 디지털 커머스 전문성과 200여개국에 이르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지마켓에 입점한 60만개 이상의 국내 브랜드와 중소기업에 국제 비즈니스 기회를 제공하고, 2000만개 이상의 한국 브랜드 제품이 세계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면서 "양사 협업을 통해 고객에게는 상품 선택의 폭을 크게 늘려주고 첨단화된 쇼핑 경험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지마켓에 등록된 셀러들은 올해 안에 해외 고객에게 상품을 판매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해외 판매는 지마켓을 통해 알리바바의 글로벌 플랫폼에 입점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첫 진출 지역은 싱가포르, 베트남,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5개 나라다. 이어 유럽과 남아시아, 남미, 미국 등 알리바바가 진출해 있는 200여개 국가와 지역 시장으로 판로를 확대할 방침이다.
양사는 통관, 물류, 현지 배송 및 반품, 고객 관리까지 모든 과정에서 알리바바가 구축한 시스템을 활용하면서 지마켓 셀러들이 글로벌 플랫폼에 단순히 상품을 등록하는 것 이상의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지마켓 셀러들은 알리익스프레스의 한국 상품 코너에도 입점할 예정이다. 알리익스프레스가 운영 중인 'K베뉴' 채널은 올해 7월 거래액이 1년 전보다 290% 이상 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마켓은 또 알리바바가 보유한 인공지능(AI) 오픈소스 모델 등 첨단 기술을 적용해 국내 고객에게 개인 쇼핑 어시스턴트를 도입하고, 24시간 초개인화 맞춤형 상품을 추천하고 상담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 밖에 고객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지마켓과 알리바바 플랫폼이 연계되더라도 분리된 시스템으로 관리하며 고객과 셀러 정보를 안전하게 지킨다는 구상이다.
양측은 합작법인 조직 구성과 이사회 개최, 사업 계획 수립 등을 위한 실무 작업에 즉각 돌입했으며 정리가 되는 대로 고객과 셀러에게 비전을 밝히고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신세계와 알리바바의 합작법인이 출범하면 국내 e커머스 시장에서 압도적인 이용자를 확보한 쿠팡과의 격차를 상당 부분 따라잡을 수 있다. 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이 지난달 종합몰 애플리케이션(앱) 이용 현황을 분석한 결과 이 기간 쿠팡이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 3421만7000여명으로 1위였다. 2위는 알리익스프레스로 이용자수는 920만명이었고, 이어 테무(812만명), 11번가(796만명), 지마켓(668만명), 네이버플러스 스토어(431만명) 등의 순이었다. 알리익스프레스와 지마켓에 옥션 266만명을 더하면 이용자 수는 1854만명으로 늘어난다.
쿠팡의 독주 속에서 다수 플랫폼이 우후죽순 난립한 e커머스 시장은 온·오프라인 기업들이 경계를 허물고 합종연횡하는 양상이다. 대표적으로 네이버가 최근 롯데유통군과 인공지능(AI), 쇼핑, 마케팅,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 4개 분야에서 전략적 업무 제휴를 진행하기로 했고, 신선식품 전문 컬리와는 네이버플러스 스토어앱에 '컬리N마트'를 신설했다. 이 밖에 대형마트, 기업형슈퍼마켓(SSM), 편의점 등 오프라인 점포와 주문 시 1시간 내 배송하는 퀵커머스 서비스도 확대하고 있다.
여기에 지마켓·알리 합작법인이 확장된 이용자 수와 물량, 가격 경쟁력 등을 무기로 쿠팡, 네이버 등과 경쟁을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경쟁 구도가 치열해질수록 비슷한 상품을 보다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혜택이나 서비스가 확대될 수 있다"고 짚었다.
다만 합작법인의 시너지에 대한 회의적인 반응도 혼재한다. e커머스 업계 한 셀러는 "알리익스프레스에 입점한 상품에 대해 '품질은 떨어지지만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속는 셈 치고 구매해 보자'는 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만연해 있고, 해외시장에서는 품목별로 비슷한 상품군을 갖춘 글로벌 공급자들이 워낙 많아 판매자 입장에서 해당 플랫폼에 입점하는 메리트가 부족하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수년간 적자를 감수하고 인프라를 구축해온 쿠팡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셀러와 이용자의 이탈"이라며 "이 부분을 막기 위해 가격 정책에서도 추격하는 사업자들의 정책을 지켜본 뒤 곧바로 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커, 경쟁자들이 판세를 뒤집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