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2도]위기의 한국영화, '얼굴'에 답이 있다

2억원 프로젝트…비합리·노동력 착취 비판
뒤집어보면 중견·신인 감독 상생의 길 보여

영화 '얼굴' 스틸 컷

영화 '얼굴'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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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얼굴'의 순제작비는 2억원이다. 촬영 13회차 만에 완성했다. 독립영화가 아니다. 상업영화에서 날고 기는 배우와 스태프가 참여했다. 스태프 막내 기준 최저시급만 받고, 나머지는 수익배당금으로 대체한다. 주연 박정민은 출연료를 포기해 수익배당금만 받는다.


연상호 감독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부산행', '염력', '반도' 등을 만든 상업영화 연출가다. 인맥과 충무로 영향력이 남다르다. 지난 15일 만난 그는 "성과를 내면 저예산 영화 제작과 배급 방식에 새로운 길이 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예상과 달리 논란이 불거졌다. 비합리적 제작방식이며 노동력 착취라는 비판이 일었다. 상업영화로 개봉한 방식에 이의도 제기됐다. '얼굴'은 개봉일(11일)에 스크린 940개에서 3368회 상영했다. 2억원 영화가 이 정도로 개봉하는 일은 드물다.


연 감독은 "애초 독립영화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경쟁작들은 허탈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런 사례가 많아지면 신인 감독·배우·스태프가 설 자리는 더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실 '얼굴'이 아니더라도 한국 영화산업은 풍전등화다. OTT에 밀려 많은 투자자가 등을 돌렸다. 투자배급사가 손잡은 영화도 크랭크인이 차일피일 밀린다. 제작사에 투자금의 절반을 요구하는 사례가 흔해졌다.

한국 장편영화가 올해 칸국제영화제 공식·비공식 부문에 초청받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투자 위축으로 작품 기근에 시달린다. 내년 극장에 걸릴 상영작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영화 '얼굴'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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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올해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지원 사업'을 신설했다. 국내 최초로 도입한 100억원 규모 상업영화 지원책이다. 113편을 검토해 순제작비 20억~80억원 규모 실사 극영화 아홉 편을 선정했다. 한 편당 최대 15억원을 지원한다. 그런데 수혜자 대다수는 중견 감독이다. 상업 데뷔 감독은 신인 김선경('안동')과 단편 제작 경험만 있는 김정구('감옥의 맛')뿐이다.


중견 감독 A씨는 "투자 환경이 도전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 지원마저 기성 감독에게 집중되면 젊은 감독이 등장할 수 없다"며 "상업 감독 육성과 투자의 마중물 제공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중견 감독 B씨도 "다가올 10년도 봉준호, 박찬욱, 이창동 감독에게 기댈 수는 없다"며 "신진 감독과 중견 감독이 조화를 이뤄야 산업이 건강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 사업의 예산을 기성 감독 위주로 나눠주기보다 더 많은 신인 감독에게 기회를 주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정해야 한다. 이에 따른 기성 감독들의 기회 축소 문제는 연 감독의 방식을 지원해 해결할 수 있다. 5억원 이하 소규모 프로젝트에 대한 별도 지원 트랙을 신설하고, 수익배당금이나 지분을 배우·스태프에게 나눠주는 구조를 정부가 뒷받침한다면 기성 감독도 연출 활동을 이어갈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연 감독은 "충분한 사전 검토로 예산과 촬영 회차를 압축한다면 얼마든지 소규모 제작은 가능하다"며 "정부 지원으로 이런 방식이 탄력을 받는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기성 감독이 경력을 이어가며 새로운 작품을 준비하는 와중에 신인 감독까지 계속 나온다면 영화산업은 다시 건강해질 수 있다. 연 감독은 이미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그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는 "과거 '반도' 제작 때는 극장용 영화에 스펙터클 장면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토론토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배우 연기에 초점을 둔 감정 스펙터클도 몰입을 유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얼굴'은 개봉 1주일 만에 관객 40만 명 이상을 모았다. 손익분기점은 하루 만에 넘겼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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