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재편 서류 제출하라"…정부, 꿈쩍않는 석화업계 압박

김정관 장관, 18일 울산 NCC 방문 예정
지난 4일 민관 회의서 '속도전' 주문한 정부
기활법 근거로 지원 약속…업계는 눈치싸움

에틸렌 생산 규모를 자율적으로 줄여야 하는 석유화학 업계가 정부의 사업재편 계획서 제출 요구에 고심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기업 지원 등을 이유로 이달 초 주요 석화기업에 사업재편 계획을 작성해 제출하라고 했지만 열흘이 지난 지금까지 서류를 낸 기업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이번 주 울산 석유화학단지를 직접 찾아 사업재편 필요성을 강조할 방침이다.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산업부는 지난 4일 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함께 참석한 민관 회의에서 10개 주요 정유·석유화학사에 연내 사업재편 신청서 제출을 강하게 주문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 자리에서 "올해 안에 반드시 사업재편 계획을 완성해야 한다"며 속도전을 촉구하면서 "100% 완성본이 아니더라도 되는 대로 가져오라"고 압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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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화기업들은 계획안에 채울 내용을 놓고 신중한 모습이다. 롯데케미칼 은 "준비 단계에 있다"면서 "다양한 전략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연말까지 사업재편안을 내기로 했으니 각사별로 서류 제출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나성화 산업부 산업공급망정책관은 "기업들이 사업재편계획서 작성을 위한 준비단계에 있는 상황"이라며 "전체 회의 외에도 소규모 회의 등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오는 18일 울산 석유화학단지를 직접 찾아 사업재편 필요성을 강조할 예정이다. 당초 지난주 방문할 계획이었지만 갑작스럽게 미국 출장을 가면서 연기됐던 일정이다. 귀국 직후 다시 현장 일정을 확정한 것은 석유화학 사업재편을 통상 현안 직후 챙길 만큼 국정 어젠다를 최우선 과제로 두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울산은 에쓰오일( S-Oil )의 대규모 증설이 예고된 곳으로, SK지오센트릭과 대한유화에 구조조정 압력이 강하게 요구되는 상황이다. 이들 기업은 규모가 크지 않지만 NCC(나프타분해시설) 가동률이 높고 수직계열화를 이룬 만큼 생산 규모를 더 이상 줄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 장관의 현장 행보는 업계에 사업재편 서류 제출을 독려하고 정부 의지를 확인시키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지난달 울산 온산 석유화학산업단지에서 에쓰오일 샤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설비를 건설하기 위한 차들이 드나들고 있다. 오지은 기자

지난달 울산 온산 석유화학산업단지에서 에쓰오일 샤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설비를 건설하기 위한 차들이 드나들고 있다. 오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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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화된 설비가 많은 여수는 구조조정 압박이 가장 큰 지역으로 꼽힌다. 한화솔루션 과 DL케미칼 합작사인 여천NCC는 최근 47만t 에틸렌 생산 능력을 가진 3공장 가동을 멈췄다. LG화학 은 여수에서 208만t 생산 능력을 보유하면서 2공장(약 80만t) 매각을 시도했으나 무산된 바 있다. 이에 GS칼텍스와의 정유·석유화학 수직계열화를 검토하고 있다. 롯데케미칼 역시 여천NCC와 통합 논의를 시작했으나 가시화된 성과는 없는 상태다.


충남 서산시 대산 석화단지에서는 HD현대케미칼과 롯데케미칼이 각각 85만t, 110만t 규모로 운영 중인 NCC 통합을 전제로 정부에 구체적 지원책을 요청하며 비교적 진전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아직 실행 방안은 구체화되지 않았다. 특히 대산은 NCC 원료 다변화를 위해 에탄 도입까지 검토하고 있어 설비 감축보다는 활용도를 높이는 쪽에 무게가 실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는 이번 사업재편의 제도적 근거를 기업활력제고법에서 찾는다. 기활법은 공급과잉 업종 기업들이 사업재편을 신속히 추진할 수 있도록 세제 혜택과 금융·규제 특례를 제공하는 법이다. 기업이 제출한 재편안을 정부가 승인해야 지원이 뒤따른다. 한국화학산업협회 관계자는 "법적 근거인 기활법에 근거해서 지원책이 준비될 것"이라며 "기활법 개정안과 관련한 수요 조사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오지은 기자 j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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