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로봇산업이 휴머노이드 로봇 상용화를 새로운 성장축으로 삼기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대기업들이 내년 초 세계 최대 전자·IT 전시회 'CES 2026' 공개를 목표로 개발을 서두르면서 모터와 감속기 등 핵심 부품사들도 아직 불확실성이 큰 가운데 양산 체제 준비에 나서고 있다.
17일 아시아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국내 일부 로봇 부품사들이 로봇 제조사들에 대한 부품 공급과 양산 준비를 시작했다. 감속기 제조업체 에스비비테크는 현재 로봇에 활용되는 액추에이터 공급을 위해 시양산 중이며 하반기 본격 양산에 돌입할 계획이다. 이 업체는 최근 천안에 액추에이터 전용 공장을 마련해 생산 라인을 가동하고 있다.
부품업계 전반으로 기술 경쟁이 확산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모터 제조업체 하이젠 알앤엠도 휴머노이드 로봇 부품 시제품 개발과 제조사 공급을 진행 중이다. 또 휴머노이드 전신에 활용 가능한 액추에이터 제품을 하반기 중 공개할 예정이다. 김석중 하이젠 알앤엠 연구소장(상무)은 "협동 로봇과 달리 휴머노이드 로봇에 필요한 구동 모듈은 더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어야 한다"며 "국내에 개발된 제품이 없기 때문에 샘플을 제작해 제조사에 공급, 논의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해외 거점 확보도 병행되고 있다. 로봇 모터와 완제품을 제조하는 로보티즈는 글로벌 생산 거점 확충에 나서기도 했다. 로보티즈는 지난달 공시를 통해 우즈베키스탄에 로봇 제조 공장을 설립하고 데이터팩토리·정밀 가공·모터 생산 등 핵심 설비 투자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시설투자와 운영자금으로 1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로보티즈도 다음 달 중 로봇 손가락용 액추에이터를 공개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시장 분위기도 사뭇 달라졌다. 올해 초만 해도 국내에선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 자체가 형성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부품 제조사들이 휴머노이드 로봇용 제품을 자체적으로 개발해내더라도 실제 공급까지 이르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공급 전 연구개발(R&D)부터 시작해야 하는 제조사들 입장에서도 수요가 있지만 공급처를 구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당시 부품업계에선 "향후 대량 공급이 이뤄진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소량 주문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최근 현대차가 자회사인 보스턴다이내믹스와 함께 로봇 상용화 추진에 속도를 내고, 정부가 로봇 산업 지원을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특히 로봇 제조에 뛰어든 일부 대기업들은 시제품 제작 단계까지 일본, 중국 등 해외 부품사들의 제품을 사용했지만, 현재 부품을 국산으로 대체하는 과정을 밟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는 'K휴머노이드 연합'을 통해 개발 단계에서부터 기술 내재화를 동시에 추진 중이다. 로봇 기업과 부품 기업이 협력해 공동 개발을 하는 방식이다.
다만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아직은 국내 로봇 제조사들이 제품 개발 단계에 있어 부품 대량 공급이 현실화될지는 미지수다. 그럼에도 분위기가 전환되면서 자동차, 방위산업 등의 부품을 생산하던 업체들도 휴머노이드 로봇에 들어갈 수 있는 모터, 감속기, 드라이버 등으로 부품 확장에 나서고 있다. 로봇 부품업계 관계자는 "업체들 간의 업무협약(MOU)이나 공동 사업 개발이 조금씩 진행되고 있다"며 "로봇 부품 사업이 임계점을 넘어가고 있는 시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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