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연방의회 의장이 의원들을 향해 정치적 의미를 지닌 티셔츠를 입거나 노트북 스티커 등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경고하면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는 13일(현지시간) 독일 주간지 차이트, 슈피겔 등을 인용해 "율리아 클뢰크너 의장이 지난 9일 연방의원 전원에게 서한에서 '스티커나 기타 메시지가 부착된 기기 사용은 명확히 금지된다'며 노트북 스티커 등으로 정치적 메시지를 표시하지 말라고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클뢰크너 의장은 또 "본회의장에서 노트북과 태블릿 사용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만, 눈에 띄는 만큼 적당하고 방해되지 않게 써달라"며 "특히 회의장 앞줄에 앉은 의원들은 회의에 무관심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했다. 슈피겔은 "유난히 스티커 붙이기를 좋아하는 의원들이 노트북에서 스티커를 떼고 약삭빠른 학생처럼 책상 밑에서 스마트폰을 만질지, 아니면 클뢰크너의 서한이 단지 또 다른 도발의 빌미가 될지가 문제"라고 평가했다.
중도 보수 기독민주당(CDU) 소속인 클뢰크너 의장은 지난 5월 취임 이후 의회의 엄숙함 등을 이유로 들며 본회의장 규칙을 준수할 것을 촉구했다. 앞서 한 녹색당 의원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을 규탄하기 위해 '팔레스타인'이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본회의에 참석하자 "티셔츠에 스티커나 다른 표식은 허용되지 않는다"며 퇴장시켰다. 같은 날 이스라엘 구호를 외친 방청객도 쫓아냈다.
또 지난 7월 베를린 퀴어 축제 기간에는 의회 건물과 의원 사무실에 성 소수자의 상징인 무지개 깃발을 걸지 못하도록 했다. 당시 같은 당 소속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는 "연방의회는 아무 깃발이나 걸 수 있는 서커스 천막이 아니다"라며 거들기도 했다.
이 밖에도 클뢰크너 의장 취임 이후 노란 리본(우크라이나 연대), 수레국화(독일 극우 상징) 등의 핀과 배지, 깃발이 모두 독일 의회에서 추방됐다. 이를 두고 클뢰크너 의장은 "토론은 말로 하는 거지, 핀이나 옷 따위로 하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규제에 진보 진영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사회민주당(SPD)·자유민주당(FDP)·녹색당의 연합정부인 이른바 '신호등 정부'에서 지난 5월까지 부총리 겸 경제 장관을 지낸 로베르트 하베크는 "(클뢰크너 의장은) 항상 양극화와 논쟁, 분열을 부추겼다"며 의장직에 부적합하다고 비판했다. 다만 클뢰크너 의장은 "나도 정부에서 물러나 야당이 되는 게 어떤 건지 잘 안다. 품위를 갖추고 건설적으로 견뎌내길 권한다"고 반박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