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철회하는 게 맞다." "일부러 증시 활성화를 방해하냐는 오해가 생길 정도로 무리한 세수 기안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 기준이 되는 대주주 요건을 10억원으로 낮추는 방안을 철회하겠다는 뜻을 시사하자, 자본시장 및 세법 전문가들은 "잘한 결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코스피 5000 달성을 목표로 한 현 정권이 세수 실익도 크지 않은 상황에서 굳이 시장 심리를 위축시키는 안을 강행할 이유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양도세 부과 기준을 낮추지 않고 현행 50억원으로 유지하기로 입장을 선회한 배경으로 '자본시장 활성화'를 언급했다. 그는 "정부 경제정책 핵심 중의 핵심인데 (증시 활성화에) 장애를 받게 할 정도라면 굳이 고집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을 한다"며 "국회 논의에 맡길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정부안 철회를 시사한 것이다. 대통령이 취임 100일 내 공개했던 정책을 두고 이처럼 한발 물러서는 것은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시장 반발이 큰 데다, 새 정부가 강력히 추진 중인 증시 부양책의 정책 일관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를 진지하게 고려한 결정으로 해석된다.
신한자산운용 부사장 출신인 서준식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무리한 세수 기안이었다"면서 "세수 실익이 없는데 괜히 증시 활성화를 저해하는 부분을 철회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박성욱 경희대 회계·세무학과 교수 역시 "어차피 10억원으로 낮춰도, 10~11월께 매도하면서 (세금) 회피가 가능한 구조였다. 자본시장에 교란만 일으키고 장기투자를 못 하게 악영향을 미치는 안이었다"고 철회 결정을 환영했다. 그는 "대주주 판단 기준을 10억원으로 유지한다면 많은 투자자가 주식을 일시적으로 매도하며 10~11월에 특히 주가가 많이 빠질 것이다. 소형주, 코스닥의 피해는 더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 7월 말 정부의 세제개편안을 통해 상장주식 대주주 판단 기준을 현행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대폭 하향하는 내용이 공개되자, 다음 날인 8월1일 국내 증시 시가총액은 무려 116조원 증발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횡보장을 이어온 국내 증시는 최근 10억원 철회설이 대두하면서 다시 오름세를 보였다. 전날 코스피는 장중 3317.77까지 치솟으며 직전 사상 최고 기록(3316.08·2021년 6월25일)을 4년여 만에 갈아치웠다. 이날도 장 초반 3340선을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과 교수(한국조세정책학회장)는 "새 정부 출범 후 주식시장이 계속 좋다. 그 힘을 그대로 두겠다는 의지로 보인다"면서 "정부로선 투자자들의 심리적 위축까지 크게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한국세무학회장을 역임한 '경제통'인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50억원 기준 유지가 현 정부의 기조에 맞는다고 본다"면서 "앞서 금융투자소득 과세를 유보한 배경도 주식시장 저평가를 지속하게 해 개미투자자들이 어렵게 된다는 논리였다. 오히려 금융투자소득세 과세가 조세형평성에 더 부합하는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장기적으로 글로벌 기준에 맞춰 양도세, 배당소득세, 금융투자소득세 등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세수 로드맵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서 교수는 "지금은 시기상 아니다"면서도 "코리아디스카운트가 충분히 해소됐을 때,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다른 나라 수준으로 올라갔을 때 양도세도 배당소득세와 묶어서 고려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장기적인 양도세 플랜과 함께 배당소득세의 경우 기재부 안보다 더 낮춰야 할 필요성이 있다"며 "종합적인 세수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교수 역시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해서 일정기간 현 기조를 유지하되, 중장기적으로 금융투자소득세를 도입하는 등 글로벌 조세 기준에 부합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재 한국의 12개월 예상 PER은 9.8배로 미국(22.5배), 중국(12.3배), 일본(16.1배) 등에 훨씬 못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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