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본청 진입하는 계엄군. 아시아경제DB.
지난해 12·3 비상계엄 발령 당시 제주도청이 일시 폐쇄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지역사회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비판론은 도지사가 지방행정의 책임을 방기했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반대 측에서는 계엄 체제의 법적 구조상 본질적 의미가 크지 않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현행 헌법과 계엄법에 따르면 비상계엄이 선포될 경우 해당 지역 군 지휘관이 행정·사법·치안 전반을 관할한다. 제주에서는 해병대 9여단장이 수임군부대장으로 지정돼 계엄사령관 역할을 맡는다. 이 경우 지방자치단체의 기능은 상당 부분 제한된다.
군사 전문가 A씨는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사실상 수임군부대장이 도지사보다 상위 권한을 갖게 된다"며 "도청이 문을 닫았다고 해서 행정 기능이 전면 마비됐다 보기보다는 계엄하에서 조정된 조치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비상 상황에서는 완벽한 상황 파악 이전에 핵심 시설을 우선 방어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주둔지 방어, 기지 방어, 청사 방어는 기본적인 매뉴얼"이라고 덧붙였다.
제주도 관계자 역시 "총리실과 행안부 계엄 매뉴얼에 비상계엄 발령 시 청사 출입문 폐쇄 항목이 포함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는 자동으로 내려지는 절차일 뿐, 특정인의 결심에 따른 특별 조치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제주도 통합방위협의회 한 고위직 인사는 "비상 상황에서는 여러 시나리오를 가정해야 한다"며 "군부대가 잘못된 판단으로 청사에 진입을 시도했을 가능성까지 고려한다면, 일단 청사를 폐쇄하고 군부대와 국회의 동향을 살피는 것은 최종결정권자의 합리적 판단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반면, 지역 정치권에서는 책임 공방이 거세다. 전 도의원 B씨는 "도지사가 위기 상황에서 도민 안전과 행정 연속성을 지키려는 최소한의 역할마저 포기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대로 한 여권 인사는 "계엄 상황에서 지방정부 권한은 본래 제한된다. 이를 정치적 책임론으로 몰아가는 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공세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도민 사회에서는 정쟁보다 실질적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크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중요한 것은 위기 상황에서 지역사회 안전망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인데, 과거 조치를 정치적 논란으로만 소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역 정가 일각에서는 이번 공방의 배경에 선거 전략이 자리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 정치권 인사는 "오영훈 지사 측이 권리당원을 대거 확보해 경선 구도가 불리하지 않게 된 상황에서 일부 세력이 무리한 공세를 통해 정치적 균열을 노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았다.
결국 도청 폐쇄 논란은 계엄 절차의 적법성보다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적 공방 성격이 강해 보인다. 그러나 계엄 상황에서 지방행정의 권한은 본질적으로 제한된다는 점에서, 정치적 책임 공방은 실익이 크지 않다. 이번 논란은 정쟁을 넘어 향후 위기 상황에서 도민 안전과 행정 연속성을 지키기 위한 위기 대응 체계와 매뉴얼 정비 필요성을 다시 확인시킨 사건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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